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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11. 2023

상류엔 맹금류? 그렇다면 하류에 있는 건?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중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

   제희는 주인공 나의 옛 연인이다. 재희가 아닌 제희이다. 제희는 흔한 이름의 재희가 아니라 제희다. 나에게 제희는 특별하고 오롯하다.


  나는 제희와 내가 찍은 결혼 사진이, 그들의 아기의 돌 사진이, 그 아이가 마당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이 제희의 집에 걸리리라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구성원으로 그들 곁에 앉으리라. 나의 원가족과는 다른 그들과 말이다. 


  주인공이 제희와 그의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들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말은 아니다. 번듯하게 살았던 가세가 기운 것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모두 떠안고, 그 안에서 가족을 유지한 것이 평생의 자부심인 재희의 어머니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가족을 유지한 대가로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은 자신들이 써보지도 못한 돈에 대한 빚인 것을 나는 끝내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한 것과, 내가 부도덕하다고 생각한 것이 다름이, 그 작은 다름에 대한 생각이 지금 내 곁에 제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쩜 그녀는 제희에 대한 사랑보다 제희와 결합함으로써 얻게 될 제희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걸 원했던 걸까. 스스럼 없이 껴안는 그들을 보며 나도 안겨보고 싶고, 안아 보고 싶어. 자신의 결핍이 채워지길 바란 걸까.


  그 어떤 날 주인공이 수목원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럼 그녀는 지금 그 집의 벽에 그녀의 미소를 걸어둘 수 있었을까. 수목원은 나도, 제희도, 제희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처음 가는 곳이었다. 왜 그곳에 하필 넷이, 하필 모두 처음, 하필 거기를 간 것일까.


  제희의 어머니가 싼 짐은 모두 여섯 개. 어머니의 말을 온순하게 듣고 불안하게 카트에 올리는 제희. 


  주인공은 어느 시점에서 말했어야 할까. 불안했던 차 안에서? 위태롭게 카트에 짐을 올리는 그 시간에? 불안했던 차 안에서 분위기를 누그릴 다정한 말을 했어야 하는 걸까? 짐을 모두 올리려는 제희의 어머니와 제희를 만류했어야 하는 걸까?


  아마 그럴 것이다. 제희와 제희의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놀러 가 본 사람들이었다면 그 뜨거운 날, 그 넓은 수목원을 소풍 장소로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희의 어머니도 그렇게 많은 걸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소풍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다.


  제희는 그 소풍을 망치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태롭게 쌓여있던 그 짐들처럼 주인공의 마음은 위태로워졌음을, 절룩이며 걷는 제희의 뒤로 걸으며, 어느새 그녀의 마음도 갸우뚱하며 기우뚱해졌음을 제희는 알까. 


  제희가 어머니 아버지가 차에서 서로에게 으르렁 댈 때,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 했을 때, 짐을 못 실었을 때, 복사뼈에서 큰 소리가 났을 때 그 때, 그 모든 순간에 제희가 화를 내며 소풍을 그만두자고 했다면 그녀는 지금 제희 곁에 있을까? 아니지. 그러지 않은 제희이기에 그녀는 제희를 사랑했을 거고, 그런 제희였기에 제희는 지금 그녀의 곁에 없는 거겠지.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구요. 


  당신들이 입을 헹군, 당신들이 손을 씻은, 당신들이 세수를 한, 당신들이 밥을 먹은, 당신들이 늘 디디는 곳은, 당신들의 평생은 상류에 있는 맹금류들의 똥물이라구요. 당신들은 상류에서 내려온 똥물을 마시는 사람이라구요. 바로 하류에서 말이예요. 


  상류엔 맹금류가 있어요. 당신들은 무엇이었나요. 맹금류의 먹이? 맹금류를 피해다니는 약한 동물? 그 절뚝이는 다리로 제희, 너는 맹금류가 될 수 없겠지. 맹금류들끼리는 서로 껴안지 않아. 


  주인공은 그 소풍을 통해 알게 된다. 사랑해 마지 않은 그들이 자신과 함께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 하류에 머물고 싶지 않음을. 끝끝내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주인공의 그 말을 통해 오늘의 소풍과, 그들의 처지를 일거에 실감하게 된다. 


  주인공이 택한 남자는 제희와 모든 면이 다른 사람이다. 제희보다 키가 크고 얼굴이 검고 손가락이 굵은 그는 제희 보다 섬세하지 않을 것이다. 형제가 없는 그는 제희의 집같은 벽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두 시간 걸리는 곳에 사는 그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아무런 근심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만약 제희와 결혼한 사이였다면 그들의 소풍은 완연히 다른 색깔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좀더 많은 것을 주장하고 많은 것을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희와 그녀가 좀더 나이가 많았다면, 그래서 서로에게 첫사랑이 아니었다면 또 달랐겠지.


  그녀는 지금도 남편 옆에서 여전히 갸우뚱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나는 왜 내 무릎 위에 무화과 상자를 놓던 그 가족들의 가족이 아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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