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Mar 22. 2024

그늘에 서 있는 검은 그녀들

넬라 라슨의 <패싱>을 읽고

  아이린과 클레어의 뜻밖의 만남은 시카고. 팔월. 난폭하게 노려보던 태양이 비가 되어 내리듯 뜨거운 햇살을 쏟아붓던 그 어느 날이다. 그 더위를 피해 들어가 미풍이 부는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난 그녀들. 정수리에 태양이 꽂히는 인생을 살던 그들의 뜻밖의 만남. 그리고 거기서 부는 미풍. 그 미풍은 열기를 식혀줄 미풍일 것인가, 열기를 더하여 마침내 그들의 인생을 불길로 휩싸이게 할 풀무질이 될 것인가.      


<아이린, 클레어, 거트루드, 잭의 만남은>

  앳되고 예뻤던 거트루드가 정육점 주인의 아내처럼 보이게 되기까지, 백인과 결혼한 그녀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제 패싱을 통해 백인인척 하며 백인과 결혼한 클레어, 흑인인 것을 숨기지 않고 백인과 결혼한 거트루드, 흑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흑인과 결혼한 클레어가 만난다. 흑인임에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린은 남편이 흑인이며, 자신의 아이가 검은 피부를 가졌다는 사실에 왜 분노, 노여움, 모욕감과 싸워야 할까.

  잭의 등장은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이다. 세상에, 클레어를 향한 그의 애칭이라니. 네 명이 분노와 치욕, 모욕감으로 들끓으면서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그런데 잭이 나쁜 사람인가? 잭은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나 좋은 사람 아닌가. 스스로 밝히듯 애처가이며, 백인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생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 아닌가. 하지만 그는 햇빛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백인 남자 아닌가. 그늘에 서있는 검은 그녀들.      


<클레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클레어는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 클레어는 생 내내 어디에 속해 있던 적이 있긴 한가. 백인 사회? 자기 것으로 가지려고 했지만 끝내 가지지 못했던 세계, 그리고 나중에는 가지고 싶지도 않았던 세계. 흑인 사회? 그녀의 얼굴은 흑인들과는 달랐으며, 어린 시절에도 클레어는 아이린을 비롯한 흑인들 무리에 속한적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밥 켄드리의 딸이었을 뿐. 그렇다면 원가족? 아버지의 주검을 말없이 응시하던 그녀에게 가족에 대한 소속감이 있었을 리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살았던 먼 친척들? 말할 것도 없다. 클레어는 한평생 자신이 속할 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클레어가 가진 유일한 소속감은 여성이라는 것이었을까.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그녀는 유일한 그것으로 부유한 백인 남성과 결혼하고, 친구의 남편도 차지하려 하고, 웨이터에게도 도발적인 미소를 보낸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유일한 것이다. 

  클레어는 왜 브라이언과 그런 관계가 되었을까. 클레어는 왜 브라이언을 유혹했을까라고 쓰려다 그 표현은 그 관계의 모든 잘못을 클레어에게 돌리고 브라이언에게는 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은 클레어가 가지 않은 흑인의 길을 상징하는 남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겉으로는 자신을 받아들이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멸시하는 아이린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다. 또한 존과의 관계가 끝나서 버림받는다면 다시 택할 수 있는 세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클레어에 대해 알면 알수록 클레어가 저 모든 생각을 할 정도로 고양이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그냥, 거기 브라이언이 있었으니까, 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클레어는 왜 그렇게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가. 나였다면, 시카고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아이린을 보았을 때 외면했을 텐데. 그녀는 굳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이린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리고 남편과 친구들을 만나게 하고, 온갖 사람이 다 있는 댄스파티에 가고, 수시로 아이린의 집을 드나든다. 그녀는 일면 자신이 떠나온, 자신의 원래 세계였던 흑인들의 세계가 그리웠을 것이다. 강력한 끌림이 그녀를 그곳으로 가게 했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위태로운 자신의 삶을 깨버리고 싶은 자기 파괴적인 면모도 있었을 것이다. 될데로 되라지, 지긋지긋한 내 삶.

  클레어를 이해해보려고 하나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같은 해, 1927년. 독립운동가 집안의 여성이 일본 남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자라다 일본인들의 손에 넘겨진다. 거기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인과 결혼한다. 남편은 그녀를 조센징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사실 그녀의 마음은 조선인, 그것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인데. 그녀가 조선인임이 드러나면, 그녀는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잃고, 자식을 잃고 어디 그뿐인가.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러니까 클레어는 흔들리는 영혼이다. 기질적으로도 그런 성향인데다, 불안, 혼란으로 쌓인 어린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흔들리는 영혼이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흔들리고 흔들려 파편이 되어 사라진다. 희미한 미소가 스치는 그녀의 도톰한 입술.      


<아이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아이린은 자신이 흑인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백인 중산층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부수는 무엇도 용납하지 않는다. 브라이언의 이상인 브라질이 그녀에게는 죽음의 땅이다. 또한 그녀는 클레어의 패싱을 비난하지만, 그녀는 클레어처럼 생존을 위협받는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린은 왜 그토록 클레어를 싫어하는가.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왜 매번 클레어를 허용하는가. 왜 그녀가 아이들과 놀도록, 부엌을 드나들도록, 남편과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가. 그녀는 시카고에서의 만남, 자신의 집에서의 재회, 댄스파티 초대 등에서 클레어를 거절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결국은 언제나 클레어를 받아들인다. 클레어의 패싱에 대한 혐오, 클레어의 방만하고 이기적인 태도에 대한 혐오. 자신의 삶을 뒤흔들 것이라는 예감에서 오는 불안. 그럼에도 클레어의 인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끌림에 대한 공감으로 인해 클레어를 받아들이나. 클레어가 가진 원천적인 결핍과 아픔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이린도 공감하나. 나는 아직도 아이린의 클레어에 대한 지독한 혐오와 그럼에도 그녀를 늘 받아들이는 태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하겠다.     

  

“그 잔 봤죠? 운이 좋았어요. 그건 당신의 친애하는 조상들인 남부군이 소유했던 것 중에서 가장 볼품없는 것 중 하나였어요. 브라이언의 몇천 년 전 증-증-증조부 것이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요. 유구한 역사가 담긴 거죠. 아니 담겨 있었죠. 지하철도로 운반된 거예요. 아, 그래요! 원한다면 영국식으로 언더그라운드라고 하죠. 아무튼 난 오 분 전끼지만 해도 그걸 없앨 방법을 알지 못했어요. 이제 영감을 얻었네요. 그냥 깨버리면 되는 거였어요. 그러면 영원히 없앨 수 있는 거죠. 그렇게 간단하게! 그 생각은 못해봤네요.”     


  클레어를 싫어하면서도 끝내 그녀의 패싱을 깨버릴 생각은 하지 않은 아이린. 위의 대사는 아이린이 클레어의 패싱을 깨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클레어를 영원히 없애는데 일조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역시아이린은 패싱을 깨거나 아이린의 죽음에 관여한다. 소설에서는 아이린이 그 모든 것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인지에 대해서는 스르르 얇은 커튼으로 감추듯이 표현한다. 대체 클레어는 자살한 건가요, 아님 아이린이 내민 팔이 원인인가요.               




  사라졌다! 부드럽고 하얀 얼굴, 밝게 빛나는 머리카락, 불온한 주홍색 입 꿈꾸는 눈동자, 어루만지는 듯한 미소, 견디기 힘든 사랑스러움, 클레어 켄드리였던 것들이. 아이린의 평온한 삶을 뒤흔든 그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조롱기 섞인 대담함, 그녀의 농염한 자세. 종이 울리는듯한 웃음소리.          

작가의 이전글 내가 나로 이루어지는 어떤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