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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14. 2024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장류진의 <연수> 중 <연수>를 읽고

  그러니까 운전은 이 책에서 인생에 대한 비유일 수 있다. 주인공은 운전이 자신에게 거의 유일한 실패라고 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실격, 시동 끄고 내리세요. 우리의 머리를 울리는 이 소리.


  주연은 이 세계에서 남편의 팬티에 똥이 묻어 있는 세계, 팬티 8개를 만원에 파는 세계에 대해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팬티를 8개에 만원에 팔고 사는 세계가 누구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거늘 그녀의 태도는 심상치 않다.


  그런 그녀에게 등장하는 연수 선생님. 


  “내 눈에 초보들은 다 아기 같단 말이야.”

  “그것도 갓 태어난 갓난아기.”


  이제 운전에서도, 아마도 인생에서도 갓난아기 같은 그녀는 연수 선생님에게 운전을 통해 인생에 대해 하나하나 배운다. 남편 밥은 차려주고 왔냐는, 나중에 아기 낳아보면 알겠지만 운전을 미리 연수 받기로 마음 먹은 건 잘한 거라는 그녀의 말은 엄마의 세계, 팬티 8장에 만원인 세계와 다름 아니라 그녀를 아연하게 한다. 


  그녀가 비싼 외제차에 붙인 커다란 초보 표시는 또 한 번 주인공을 질색하게 한다. 


  “무슨 무슨 아우디가 주연씨 지켜주는 줄 알아요?”

  “이게 주연씨 지켜주는 거야.”


  주연을 지켜주는 건 그러니까, 주연이가 실패없이 이뤄냈다고 했던 것들-명문고, 원하던 대학 입학, 회계사 직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그녀를 지켜주는 건 무엇일까. 


  주연이 혐오하던 세계는 사실 엄마의 세계이다. 아마도 홀로 팬티를 8장에 만원에 팔며 주연을 키웠을 엄마에게 주연의 성공은 곧 자신의 성공이다. 주연이 명문고를 가면 엄마가 명문고를 간 것이고, 주연이 회계사가 되면 엄마가 회계사가 된 것이다. 주연의 엄마의 인생에서는 자신의 성공=자식의 성공이며, 이것은 주연이 맘카페의 세계를 싫어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다.


  이제 주연이 만난 연수 선생님도 사실은 엄마와 다를 바 없다. 그녀의 휴대폰 속 샤라포바처럼 웃고 있는 딸은 연수의 엄마에게 연수와 같은 존재이다. 샤라포바의 성공이 연수 선생님의 성공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연은 엄마와 다름 없는 연수 선생님을 통해 다시금 환멸과 회의를 느낄 것인가.


  아니다. 주연은 연수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초보’임을 알게 된다. 주연을 지켜주었던 것은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던 것들이 아니라 자신을 속 터지게 했던 그 어떤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내 차를 막아주며 신경질적인 경적을 고스란히 자신이 받아낸 누군가 덕분임을 말이다.


  주연이 운전을 다시 하기로 한 것은 어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려던 마음의 소리에 응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주연은 연수 선생님에게 거짓을 말한다. 우리 회사에 오십대 여자도 되게 많아요. 당신이 꿈꿔왔던, 자식을 전가해서라도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룬 여자들이 많답니다.


  앞으로도 주연은 엄마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같이 가다 보면 지금껏 질주만 한 이 운전의 중간중간에 꽃길도 있음을 알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이어질 엄마들의 말.


“계속 직진. 그렇지.”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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