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May 21. 2024

대접에 받은 대접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조차 할 수가 없었고~ 하는 게 어렸을 때 우리 집 사정이었다. 엄마는 두 딸을 홀로 건사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늘 이 일, 저 일 하면서 힘들게 사셨다.


  대학 때 친구가 자취방에서 만둣국을 해준 일이 있다. 만둣국을 먹으면서 내가 ‘우리 엄마는 늘 만둣국을 국그릇에 주고, 옆에 빈 밥그릇을 주셔.’라는 말을 했는데, 친구가 ‘그걸 왜 주시는데?’하는 거다. 왜긴? 국그릇에 담긴 만두가 뜨거우니까 그걸 하나씩 덜어 밥그릇에 식혀 먹으라고 주신 거지. 그 이유를 모르는 친구가 신기했다. 친구는 자기 엄마는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다고 신기해했다. 나는 그런 친구가 신기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사십이 넘어 내가 엄마한테 받은 작은 대접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가난한 와중에도 곱게 자랐다는 것이 내가 내 자신에 대한 평가인데 그렇게 자랄 수 있었던 이유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 대접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 이제 와서 보니 작고 귀여운 보석들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엄마는 김치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준 적이 없다. 계란 프라이를 반찬으로 싸준 적이 없다. 김치라면 볶음김치, 계란 프라이는 아니고 계란말이. 그러니까 돈을 더 들인다기 보다 도시락을 위한 반찬을 따로 한 거다. 비싼 도시락 반찬은 기억에 없지만 항상 아침에 만든 무엇인가를 싸주셨다. 오뎅볶음이라도 한 번은 간장 오뎅볶음, 한 번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오뎅볶음 이런 식으로. 그 작은 노력과 성의가 작은 것이 아님이 애들을 키우는 지금에야 새삼스럽다. 


  그리고 중학교 때 친구집에 놀러가서 다 같이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친구가 밥 먹을 때 주는 숟가락을 줘서 조금 놀랐다. 엄마는 항상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지금은 티스푼이라고 부르고 그때는 차숟가락이라고 부르던 숟가락을 주셨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그 모든 일이 어린 내가 받던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한테 혼났다는 말을 들으면 일단, ‘그 선생님 이상하다.’라는 말부터 했다. 내가 자란 그 시절에는 이게 굉장히 특이한 관점이었다. 보통은 ‘네가 뭔가 잘못한 거지. 선생님 말이 무조건 맞아.’ 하던 시절이었다. 일단 엄마는 기본적으로 ‘내 딸은 옳아. 내 딸은 맞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께는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부치신 적도 있다. 


  그 모든 일을 생각해 보건데 가난한 와중에도 대접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은 일들이 내게 스며들어, 나는 언제나 대접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둣국을 식히는 그릇을 주지 않는다고, 밥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해서 자식을 대접하지 않는 엄마는 아닐 것이다. 엄마들은 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하니까. 또 우리 엄마가 그 모든 걸 의식적으로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대접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센스가 좋은 사람이라서였을 수도. 그래도 난 내가 받은 그 작은 일들이 티스푼에 뜬 아이스크림의 양만큼이라도 나를 좋은 방향으로 크게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우아하게 육아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접 받고 자랐고, 그래서 나에게 향하는 부당한 대우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해 보는 하루다.    

작가의 이전글 삼둥이의 화려한 옷 매무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