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부모인데, 게으르고, 근데 남들 가는 해외여행은 가고 싶었다구요!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외국여행 자주 다니는 가족이세요?>
그럴리가요! 개인적으로는 십 년 전 신혼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 해외여행. 남편도 마찬가지. 아이들은 인생 첫 해외여행. 신랑의 복직이 다음 달이라 왠지 꼭 가야만 할 거 같아 떠난 여행이다. 초보들의 해외여행이라 올인클루시브, 패키지여행이었으며 게으름의 극치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떠난 여행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알아보지도 않고 여행하면 다 누리지 못 하고 와서 아쉽지 않냐고. 아니 그럴리가요! 애초에 알아보지도 않아서 뭘 못 누렸는지도 모르는 걸요~~ 그러니까 이 후기는 여행에 대한 유용한 정보는 1도 없는, 다자녀를 가졌지만 게으르기 짝이 없는, 그래도 남들 가는 해외여행은 가보고 싶었어용하는 사람의 여행 후기 및 에피소드다. 내가 간 곳은 괌, 그리고 숙소는 PIC.
<영어와 텀블러>
괌은 영어가 딱히 필요 없었다. 영어를 문장으로 말한 적이 없고, 거의 단어 한 마디씩 하는 거면 됐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숙소라 한국인 직원도 많았고, 공항에서도 한국인을 많이 겪어본 관대한 직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괌 공항에서는 현지 직원 분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도 봤다.
부끄럼쟁이 신랑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행의 다른 부분을 태만하지 않게 하는 터라 그 정도야 하면서 내가 떠듬떠듬 의사소통을 했다. 나의 영어 실력도 어디 내놓을데도 없고, 아무도 내놓으라고 하지도 않는 실력. 내가 그 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조금 더 뻔뻔한 것. 그래도 그렇지. 정말 죽어도, 단 한 마디도 영어를 하지 않는 그의 한결같은 태도.
그러다 신랑이 괌에서 예티라는 텀블러를 파는데 그게 한국 보다 싸다고 흥분하며 말했다. “자기야, 이 텀블러에 얼음을 넣으면 며칠이 간대!”
허허, 깔끔쟁이인 그가 텀블러에 며칠간 얼음을 둘리는 없는데! 그래도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먼저 뭘 사고 싶다고 말하는 건 처음 보는 터라 신기했다. 그리고 기념품을 파는 숙소 지하 매장에서 아이들과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있는데. 허허, 신랑이 직원을 붙들고 예티 텀블러에 대해 더듬더듬 묻고 있지 않는가. 저 녀석, 죽어도 영어 한 마디 안 하더니 자기가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안 하던 영어도 하는구나. 허허허, 혼내주고 싶네.
십 년 전 몰디브로 간 신혼여행 때는 영어와 관련해서 그런 일도 있었다. 내가 숙소의 욕실에서 씻고 있는데, 신랑이 욕실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자기야! 자기야!!!” 괴성을 지르는 거였다. 나는 그 지역에 지진이라도 났는지 알고 씻다가 뛰쳐 나왔다.
“왜! 왜!!!”
“자기야, 전화, 전화가 와!”
그는 영어로 말할 것이 틀림 없는 숙소 전화의 상대방에 겁을 집어 먹고 씻고 있는 나를 불러낸 것이다. 아, 이 녀석 십 년 전부터 한결 같네.
<수많은 자기들>
내가 묵은 숙소 PIC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어린이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니 우리 삼둥이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었고, 그들의 부모들도 내 또래이리라. 그 곳은 90프로 정도가 한국인인 것 같았다. 영어 보다 다른 지역 사투리가 더 많이 들렸다. 그래서 물놀이하는 곳에서 저 멀리 가는 신랑을 “자기야!”하고 부르면, 특히 짜증을 섞어서 “자기야!” 하고 부르면, 수많은 남자들이 자기를 부르는 자기인 줄 알고 뒤돌아 봤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전국의 자기들이 괌에 모여 있었단 말인가.
<놀이 중에 놀이는 물놀이>
일어나서 물놀이, 밥 먹고 물놀이, 쉬고 나서 물놀이, 간식 먹고 물놀이, 쉬하고 나서 물놀이, 이리 보아라 업고 놀자 물놀이, 노세 노세 초딩 때 노세 물놀이. 정말 꽉 차게 물놀이만 하다 온 여행이다. 아, 우리 엄마가 말씀하셨다. 물놀이를 꼭 괌까지 가서 할 거 있냐! 그러네요, 엄마! 어차피 360도 둘러봐도 다 한국 사람인데 꼭 괌일 필요 있었나요? 그래도 삼둥이 어린이들이 기뻤으니 됐죠 뭐.
<생명을 유지할 정도만 먹는 중이야>
PIC의 식사는 그냥저냥의 수준이었다. 올인클루시브라는 게 너무 큰 장점이다. 다른 식당을 안 알아봐도 되니까. 식사의 수준은 입맛의 기준이 낮은 나에게도 그저 그런 수준. 오호, 근데 삼둥이는 물놀이를 해서 그런가 너무 너무 맛있단다. 한 끼, 한 끼를 정말 그득그득 먹는 어린이들. 그러나 우리집 복병은 어린이들이 아닌, 그 사람. 나의 남편. 그는 깨작깨작, 쬐꼼쬐꼼 먹으면서 입맛에 너무 안 맞는다며 슬퍼했다. 나중에는 화장실에도 못 가겠다고, 먹은 게 너무 없다며. 자기는 매 끼니 생명을 유지할 정도만 먹고 있다고. 아, 있잖아. 음, 내가 자기 식사까지 걱정하게 하지뫄아!!!
<해외여행 준비물 삼 만 가지>
괌 여행으로 유명한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빠른 시일 내에 찾아봤다. 한없이 게으른 우리지만 일주일 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미친 듯이 카페를 뒤지며 정보를 찾았고, 이게 필요하대! 이것도! 이것도! 하면서 다이소 방문 후, 다시 체크하고 다이소 2회차 방문. 그래서 다이소에서만 여행 준비물로 십 만 원 가까이 쓰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가니! 아, 원래 무던한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준비물이 삼 만 가지 중 이만 구천 구백 구십 오개 정도였다. 애초에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들이 준비도 열심히 하고,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는 수고도 하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은 준비 대충 가도 별 문제 없습디다!라고 알게 되도 카페에 글을 올리지 않는다. 왜냐, 게으르니께!
삼만 가지 준비물 중 대부분은 포장도 벗기지 않고 도로 가져왔다. 예를 들면
빨래집게-건조대에 널고, 귀찮아서 빨래집게의 포장도 뜯지 않았습니다!
햇반-김밥도 나오고 김치도 나오니까 햇반 역시 뜯지 않았습니다. 같은 의미로 싸간 김과 김자반, 일회용 숟가락, 젓가락도 뜯지 않았습니다.
<나는 스냅사진 매니아>
스냅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이유는? 사진을 정말 못 찍기 때문에! 그리고 세쌍둥이를 쪼로록 같은 옷을 입혀서 매년 사진 찍어주는 것이 매년 꼭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냥 남매도 아니고 삼둥인데 매년 기념사진은 박아주고 싶은 삼둥맘의 마음. 작년에는 제주도에서 스냅사진을 찍었고, 올해도 하와이안룩을 다섯이 차려입고 스냅을 찍었다!
여기서 외국에서 스냅 찍을 때의 주의사항 하나! 워낙 게으르고 알아보는 걸 안 해서 여행 이틀 전에 스냅사진을 예약한 나다. 그래서 스냅사진을 여행 마지막 날에 찍게 되었다. 만약 외국에서 스냅사진을 찍으려는 분이 있다면, 웬만하면 여행 초반에 잡으시길. 막내가 모자 두 개를 연거푸 잃어버려서 햇볕을 있는 데로 받았다. 외국의 해는 우리 나라의 햇빛 보다 심히 매운 맛. 모두가 얼굴이 잔뜩 그을린 데다, 마지막 날의 피로까지 겹쳐서 몹시 휑한 몰골이었다. 다음부터는 여행 초반에 스냅을 찍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