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뜨거운 계절에 이십 팔년 된 기억을 떠올려 본다. 나는 시골 여자중학교 3학년, 지금처럼 작고 똥똥한 학생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있던 조회 시간. 나는 키가 작아 앞에서 세 번째 줄 정도에 서 있었다. 전교생이 다 모여 조회를 하고 있었다. 길고 긴 여름의 조회는 계속 되었고, 교장선생님의 말도 계속 되었다. 정수리로 해가 칼처럼 꽂혔다.
그때 저 너머 양호선생님이 1학년 학생들에게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쓰러진 학생을 데리러 가는 것이었다. 웅성웅성, 작은 소란스러움이 지나가고. 그러나 지나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교장선생님의 말이었다. 교장선생님은 힐끗이라도 쓰러진 1학년 아이를 봤을까. 그리고 또 작은 소란스러움. 또 한 명의 아이가 쓰러졌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교장선생님의 말.
그리고 내 앞에서 풀썩, 하고 내 앞의 친구가 쓰러졌다. 반사적으로 그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고 평소답지 않은 날렵함으로 그 아이를 받아냈다.
그 아이는 학기 초 신체검사에서 35킬로그램으로 반에서 제일 적게 체중이 나가 친구들의 탄성을 자아내던 아이였다. 아직도 그 아이의 동그란 눈이 생각난다. 내 앞에서 풀썩, 하고 스러지던 모습도 어제처럼 기억이 난다. 아이는 체중이 느껴지지 않게 볏단처럼 스르르 쓰러졌다. 일 년 중 제일 바쁜 날을 맞은 양호선생님과 또 다른 선생님이 그 아이를 부축해 가고.
그러고도 또 몇 명이 쓰러졌다. 1학년이 풀썩, 2학년이 스르르, 3학년이 또 풀썩. 그리고 그러고도 계속 이어졌다. 교장선생님의 말이.
그때 기억에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쓰러졌다. 아직도 그 장면들을 생각하면 울컥한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영화처럼 기억이 난다.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이 기억 속에서 교장선생님은 차양이 처진 교단 저 위에서 계속 말하고 있다. 햇빛을 안 받은 그의 이마는 서늘했을까.
그리고 이 명확한 기억에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교장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그렇게 길게, 열 명의 여학생들이 쓰러지도록, 그걸 눈 앞에서 보면서도 끊지 않고 계속 했던 말들이라면 정말 아주 긴요하고 중요한 이야기였을 텐데 한 마디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학생들이 쓰러지는 걸 보고도 계속 말을 이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말씀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내가 울컥하는 것은 그때의 여학생들이 불쌍해서일 수도 있다. 자신은 그늘 속에서 목을 높여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이 쓰러지건 말건 말을 하던 교장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크게 울컥하는 부분은, 열 여섯의 내가 그때 그 광경을 보고도 아무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것,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지글지글 여름이 끓고 있다. 그때의 그 여학생들 다들 잘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