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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쉬는 생명의 터전, 보존 바라기

by 정미영

두텁게 깔린 무더위의 질감이 가속되는 나날입니다. 장마철에 들어섰고 기온도 잠시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습기까지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잠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죠. 호흡기 약한 이 늙은이에게 올여름 들어서 더위로 부대끼는 일이 하나 보태졌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사뭇 다른 느낌이 몸 구석으로 퍼져나가는 듯합니다. 더위의 면역력 저하로 건강 전선에 이상이 온 겁니다. 자주 피곤한데다 기운이 없고, 3주째로 머문 감기증상이 몸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견딜 만해 지난 월요일 인문학강좌 참석에 만반의 채비를 하고 나섰습니다. 준비해 간 보온재 덕분에 대중교통 이동 중이거나 강의실에서 줄곧 뿜어대는 에어컨 바람과 맞설 수 있었지요. 강의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미루어뒀던 영화 생각이 났습니다. 이참에 여유로움을 되찾고 싶은 욕심에 영화관 문을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아름다운 걸 본 것도 죄가 될까.’ 영화, ‘수라’ 갯벌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수년간 이어온 새만금 간척사업에 한 가닥 남겨진 희망의 갯벌, 적막과 고요에 싸인 미지의 깊은 세계를 조명해주는 것만 같았지요. 마치 우리 몸 안에 촘촘하게 이은 생명의 핏줄이 거대한 바닷길과 맞닿아 있는 것만 같고, 건강하게 자란 나무가 힘찬 뿌리를 바다로 쭉쭉 뻗어가는 장엄한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비단으로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그곳, ‘수라’. 하지만 예쁜 이름과는 달리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는 중입니다. ‘수라’가 육지화되었기에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고 보존을 포기하려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 한 편으로 ‘수라’의 향후 존망 생사의 영향을 끼칠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흙으로 매몰돼 사라지게 될 날을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하고. 그 아름다움을 대면한 대가가 말도 안 되는 언어로 포장된 어처구니없는 일을 속수무책 겪으라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수라’가 존재해야 할 당위성과 드러난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나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수라’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수상을 거머쥔 황윤 감독의 생태다큐입니다. 그녀 역시 갯벌의 존재를 모르고 지내다 군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신기한 인물 오동필씨를 만나 시민 활동가로 시작된 일입니다. 한 개인이 청춘을 바쳐 20여 년간의 갯벌 생태계를 기록해 놓았다니 그저 놀랍다는 표현으로는 가당치 않습니다. 누가 시켜서 될 일인가요. 지역가치 보존을 위해 지켜온 자발적인 활동은 흉내 낼 수 없는 감동을 자아냅니다. 무려 7년간의 촬영을 해낸 감독 자신도 생태다큐라기 보다 자신의 성장다큐였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그들의 활동무대는 어마 무시합니다.

과연 ‘수라’를 일컬어 대한민국 고유의 갯벌이라 천명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철새들에겐 국경이 없고, 길을 터줄 의무가 머물게 되는 국가에 있거든요. 철새들은 호주를 떠나 알래스카 러시아 툰드라 지역으로 옮겨 다닐 때마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 서해안 갯벌입니다. 일주일간 먹지도 못하고 쉬지 않고 망망대해를 거쳐 온 철새들이, 서해안 갯벌에서 배를 채우고 번식과정을 거칩니다. 날아오는 과정에서 철새의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죠. 이제 남은 ‘수라’ 갯벌마저 사라진다면 세계적인 재앙이 될 테고 전 지구적 철새들의 상실로 이어질 게 빤하다는 겁니다. 전 세계에 걸친 생명의 보존 장소로서 ‘수라’를 지켜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군산 갯벌이 메워지기 전, 찾아든 도요새는 10만 마리에 이르렀다고 동필씨는 말합니다. 보관해 두었던 철새들의 군무가 담긴 영상이 펼쳐지는데 그때의 감동을 다신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했어요. 멸종위기에 놓인 현실 때문이죠. 굶어 죽은 도요새의 사체들이, 매립된 땅 위에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나뒹굴고 있습니다. 애써 날아와 먹이가 있는 이곳을 기억하고 내려앉았을 때, 갯벌이 사라진 맨땅을 보고 얼마나 황당해했을까요.

화면이 바뀌면서 맛조개들이 하늘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죽은 또 다른 모습도 조개 무덤의 파노라마로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조개들은 늘 그랬듯이 바닷물이 들어올 때를 끈기 있게 기다렸을 테죠. 언제 짠 바닷물이 들어와 그들을 적셔 줄지 한 달 두 달 기다리다가 속절없이 이유를 모른 채 죽어갔을 것입니다. 이 같이 잔인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 바로 경제논리만 내세워 개발에 눈이 먼 위정자가 아닐까요.


매립된 바다와 실제의 바다 색깔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둔 곳의 물색은 어둡고 칙칙합니다. 정부는 급기야 2022년 수문을 열어 바닷물을 유입하기 시작했어요. 해수유통량이 늘어나면서 다행히 기사상태에 있던 갯벌이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옮겨가는 중이죠. 생명이 움트는 영상이 이를 뒷받침하듯 앙증맞은 생명들의 모습을 담아 쏟아내 주었지요. 국제적 멸종위기의 저어새 몇 마리가 포착되었고요. 그리고 검은머리 갈매기와 검은머리 물대새가 옹기종기 걸음마로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라’만이라도 보존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오동필씨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오랜 세월 같이해 온 ‘수라’여서 이젠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넋두리마저 흘러나왔죠. 감독은 동필씨에게 ‘수라’를 불러보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얹혀 나 역시 복창으로 응원을 날렸습니다.


‘수라’에게 지금까지 모질게 했던 일이 아직도 부족했을까요. 현재 군산공항이 있는데 또 ‘수라’ 가까이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는다니. 철새들이 걸음마로 자리를 잡아가는 그곳 가까이서 미군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갑니다.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정중앙을 내지르는 비행기 소음에 새들 무리가 화들짝 놀라 질서를 잃고 혼란스럽게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해집니다.

이제 새만금 간척 땅은 그들의 바람대로 농사짓기에는 적합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실패작이죠. 자연만 훼손한 허탈한 결과이고요. ‘수라’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터전입니다. 법정보호종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 그 생명의 터전인지 실제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의도된 목표죠. 무엇보다 아름다운 ‘수라’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감독의 추가된 사항이고요. 제발 현장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채, 책상 위의 정책 결정에 나서지 않기를 바라면서. 언젠가 잘 보존된 ‘수라’가 살아남는 날, 나는 그곳을 지체 없이 찾아가려 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귀가한 시간이 저녁 7시 반경. 돌아보니 이날, 에어컨 찬바람에 노출된 시간은 무려 8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 찬 기운에 몸을 맡긴 일을 시인합니다. 며칠 동안 내 몸을 다독여주었지요. 다음엔 주의하겠노라, 내심 약속했지만 공수표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 같은 좋은 영화를 감상할 기회가 내게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내 몸에게 허락을 받고서라도 무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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