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미영 Apr 14. 2024

나는 왜 글을 쓰나

  글쓰기는 다소 비장함에서 비롯됐습니다. 늙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무렵이었지요. 고정된 일과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치러야 할 통과의례가 그 다음으로 기다리고 있더군요. 줄어든 외부활동과 동반 하락한 인맥의 현실에 막상 놓이다보니 꽤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대책 없이 집에 머물다가 두툼해진 나이가 보태지면 타성에 의해 그럭저럭 살아가기 십상인 노년기. 속절없이 밀리 듯 살아가는 삶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나만의 시간으로 오롯이 메워야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결기마저 느껴지더군요. 그 시간대를 되레 내 가까이 바짝 끌어다 놓을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죠. 머지않아 사그라질 불꽃이겠지만 또렷한 의식이 남아있을 때까지 내 안에 군불 지피는 일을 게으르지 않기로 결심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묵직하나 선명한 시간의 기록을 남기기로 출발한 일입니다. 


  비장함엔 별도의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노년의 일과는 고독을 견디는 데 있다고 했던가요. 늙음의 증거로는 몸 보다 마음의 상태가 먼저 작용합니다. 짙게 드리워진 외로움이 변질되어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는 늙은이로 전락되는 일은 주변에 허다해서 두려운 일입니다. 혼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홀로될 확률은 높습니다. 자식이 있다한들 바빠진 삶에 부모 곁에 남아있기 어렵고 부부라 할지라도 한 쪽이 앞서가면 홀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노년기 이후에 가까이서 지지해줄 다양한 계층의 인적자원이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사람들과의 관계란 이익이 있어야 상호 유지되는 것이고, 누구나 ‘이기적 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사실 앞에 고개를 내저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문제는 마음을 내놓을 태세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서 받을 생각에만 골똘해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런 엇박자가 관계의 불협화음을 일으킬 주범이 되겠고요. 바람직한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노력 여부는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게다가 손에 익은 연장처럼 늙어갈 때까지 이어지는 관계성사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외부로의 벗을 구하기 이전에 내 마음의 근육을 살찌우는 게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나 자신부터 단단해져야 타인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법이니까요. 나에 대한 사랑이 충만해져야 타인의 마음까지 보듬을 여력이 생겨나는 것이고요. 그렇게 내 안의 글을 길어 올린 작업이 발판이 되더니 평생도반까지 건지게 되었습니다, 허접한 글이지만 두레박질로 다져진 마음엔 이미 탄력이 붙었고 탄탄한 근육까지 지니게 됐지 뭡니까. 긁적긁적 서툴게 쓴 글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군불지피는 삭정이가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미미하기 만한 잔불이 의외로 오래가고 몽글몽글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음을요. 동공이 확장되면서 어둠의 실체가 드러날 때처럼, 글에 머물렀던 시간의 진폭 또한 넓어지며 의미 있는 궤적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예기치 않은 여러 글들의 질감은 신세계로 이끈 에너지로 화해 내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글을 쓰면 도통 잡념이 생기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일이 정신건강에도 좋을 수밖에 없더군요. 그로써 곁을 지켜줄 평생 친구를 얻고 주변 관계와의 유지에도 윤활유가 됨을 확신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배려로 출발한 글쓰기는 나를 탐구해가는 시간의 연속성 위에서 이어가겠지요. 그것이 나 자신을 맡기는 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도 상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점도 분명해집니다. 비장함에서 출발한 나의 글쓰기, 통렬한 각성으로 내 어깨를 짓눌렀던 무게는 차차 가벼워져갔고, 지금은 내 곁을 지켜주는 따뜻한 동반자에 기댄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내 마음의 열정을 불살랐던 그 불씨는 이젠 꺼지지 않아 지속적으로 써내려갈 동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늙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노년기야말로 인생의 정점을 이루는 시기라는 점을요. 먹고사는 육중한 일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노년. 경제적인 측면만 조명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지닌 것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인으로 돌아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당황해 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는 지혜가 마구 싹트는 노년이기에 말입니다. 늙은 철학자가 된 것 마냥 서점가를 어슬렁거리며 은발 휘날리는 요즘. 군불을 자주 땐 까닭인지 젊은 시절 못지않은 설렘과 열정은 지금도 식을 줄을 모릅니다. 가끔 녹슨 몸에 탈이 나는 일 외에는.





작가의 이전글 화창한 봄날, 그리고 뒤안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