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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May 11. 2022

그룹이 하느님

초등 또래 공감학교 8회기

10명의 아이들 사이에 두 명의 선생님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시작부터 끝까지, 쉬는 시간까지 빈틈없이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살핍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 사이에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소통과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자동반응’을 합니다. 가차 없이 판단하고 가해와 피해를 나누려고 합니다.


상대의 행동이 용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윌리엄 피취는(1974) 우선 상대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잠시 뒤로 미루고 경청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렇게 잘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같이 상담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오랜 시간 수련을 받고 듣는 연습을 합니다. 때문에 ‘판단 미루기’를 초등학생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특히나 어린이집에서부터 웬만한 갈등 상황에서는 ‘얼른 사과해’를 늘 상 들었던 아이들에게는 말이죠.


잘잘못을 가리고 공식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면 아이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고 맙니다. 학폭위의 절차가 많은 장점과 순기능이 있음에도 이 점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때문에 소소한 갈등 상황을 덮기 위한 성급한 사과는 아니한 것만 못 하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 그리고 앞에 길게 설명한 것처럼, 상담현장은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룹에서 생긴 불편한 진실에 다가갈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합니다. 때론 집요하다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판단은 끝까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빨리 사과를 만들어내고 넘어가야 하는 은근한 압력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로 겨드랑이 땀만 차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럴 때 제가 쓰는 방법은 그룹을 믿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올라와 말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그 상태대로 존중하면서 지켜보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믿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인민재판처럼 한 명을 타깃으로 삼아 비난과 충고가 쏟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40여분이나 했습니다. 지루할 만큼 시간을 들여 이야기하고 또 했습니다. 다행히도 10명의 아이들이 제각기 다른 색깔로 상황을 비추면서 위로와 공감 그리고 걱정과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더욱 뿌듯한 것은 그래도 그동안에 다져진 관계가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한 아이의 일을 전체의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쓰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상담 스승 이종헌 박사님(Rev. Dr. Min)은 ‘그룹이 하느님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집단상담을 진행하다 어렵고 막막할 때는 그룹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상담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준 내 선생님 이종헌 박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지금도 나를 가르치고 있는 10명의 어린 스승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고 보니 스승의 날이 다가오네요.



Pietsch, W. (1974). 'Human Be-ing.' TRAFFORD,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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