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표절이라고?
K: 00 카드 제작하는 사이드 프로젝트 팀 내에서, 너네가 제작하는 감정카드가 자기네들 카드 디자인 모방한 거 아니냐는 얘기를 했었대.
뭐라고?
감정카드 텀블벅 오픈 준비를 하던 나와 우희는 이 소리에 적잖이 놀랐다. 그 카드는 '감정'을 다루지도 않고, 플레이 방법도 다르고 제작 목적도 다르다. 일러스트와 디자인 또한 다르다. 그 카드는 카드 분류를 하기 위해 뒷면 색을 1-3가지의 컬러를 사용한 그라데이션 으로 입혔고, 폰트도 우리와 다른 고딕체에 레이아웃도 달랐다. 게다가 그 팀은 내가 너무 좋아했던 팀... 그 팀의 카드 1차 제작 때 구매를 못했어서, 2차 제작 시작하자마자 구매 신청도 하고... 또 구매뿐만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카드를 사용하며 즐겁게 플레이하고... 내 개인 블로그에 선물용으로 추천한다는 글까지 썼는데!!!! (이후로 글을 내렸다... 소심하게 실망감 표현하는 편), 도대체 어느 부분이 그렇게 보였던 걸까?
그 말을 들었을 때쯤, 나의 인스타그램 일러스트 계정을 그 팀의 팀원이 팔로우를 했다. 자주 들여다보는 계정이 아니어서 나중에야 그 사람이 나를 팔로우했다는 걸 알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팔로우를 하고 나서 우리 감정카드 샘플 사진을 본인의 스토리에 올리면서 '묘하다'라는 글을 남겼다는 걸 지인이 말해주었다(정말이지 디자이너, 마케터의 시장은 생각보다 좁고도 좁다).
그 얘길 들으니 기분이 찝찝했다.
모방을 했다는 말이 나왔다는 팀의 팀원이 나를 팔로우하고, 모방을 했다고 생각하는 카드 사진을 '묘하다'라는 글자와 함께 스토리에 올렸다는 건 뭘까. 그 사람은 마케터 사이에서 꽤 유명한지 팔로워 수도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우리에게 찾아와 문제제기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내가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정말 잘못한 걸까? 싶어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하며 조심스레 얘기했다.
A: 저격이네. 너 기분 안나빠?
지인 A에게 그 말을 듣고서야 내 감정이 명확해지고, 화가 올라왔다.
그 팀원이 캡처해서 올린 우리의 감정카드 사진은, 해당 감정의 색들을 조합하여 스프레이 브러시 툴로 색을 쌓아 그린 일러스트였다. 그 부분을 모방했다고 생각했으니 그걸 올렸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면 그러데이션 정도인데, 그 팀의 카드는 색채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색'을 뽑는 카드도 아니고, 비슷한 주제의 카드들을 분류하기 위해 1-3가지의 색의 그러데이션으로 연출한 것이어서 비슷하다고 보기가 어렵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나는 표절, 모방과 같은 문제에 민감하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려 하고, 내 작업물이 문제가 된다면 그 작업의 방향을 바꾸거나 접을 생각도 충분히 있다.
근데 이건 이해가 안 갔다. 설마 정말 '그라데이션'표현이 문제였던 걸까? 그라데이션은 색을 채우는 한 방법인데, 그런 걸 가지고 따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묘하다고 생각이 드는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다.
상품 구성 중 똑같은 부분이 하나 있긴 한데, 카드 케이스로 정한 틴케이스였다. 하지만 이건 기성 제품이어서 '모방'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상황에 대해 정리해 보며 우희와 대화해 보니 화가 났던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W: 대기업 사람들 시야가 너무 좁다~
S: 그러게... 마케터나 디자이너들 중 은근 시야 좁은 사람들 많은 것 같아. 특히 작가 성향 강한 디자이너들...
W: 진짜 손톱만 한 흠집 가지고 태클 거는 클라이언트가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이랑 일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펀딩 잘 끝나면, 저 팀한테 협업 제안하고 싶었는데...
S: 정말... 근데 생각해 보니까 이게 우리가 잘못하거나 기죽을 일은 아닌 것 같네. 그리고 하찮아 보이면 그런 말도 안 나올 텐데 말이야. 우리 카드 괜찮아 보이나 보다.
W: 그러게. 그리고 분노는 원래 행동하게 하는 힘 이래.
S:오... 나도 일 진짜 열심히 할 때가 인스타그램 보다가 잘 나가는 작가 볼 때야.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고!! 이런 느낌?
W:ㅋㅋㅋㅋ 질투와 분노를 역이용하는 우리네들.
S:우리 되게 건강한 방향으로 푼다.
W:그렇네 정말 좋네. 나 예전에 화나서 킥복싱 배우러 다녔던 거 생각난다.
S: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건강하네?
W: 자주 화나야겠음...(이상한 결론)
위기라고 하기엔 작은 에피소드 지만, 이 계기로 더 다르게 그리고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그래서 가성비를 위해 선택했던 틴케이스를 포기하고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고급 종이박스로 케이스 제작을 하고, 틴케이스 사이즈에 맞춰서 넓게 디자인했던 카드들은 손에 쥐기 편한 일반 명함 사이즈로 다시 디자인하기로 했다. 96개의 일러스트를 새로운 사이즈에 맞춰서 추가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큰 작업이었다. 내가 작업한 것에 대해 더 당당하려면 대충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잘났고 저 팀이 잘못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 에피소드를 제작일지에 남기는 건 아니다. 위기처럼 느껴졌던 일로 인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됐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 감정도 그렇다. 흔히 위기처럼 느끼는 불안함과 화남, 우울함 같은 부정 감정 군의 감정들은 피하지 않고 잘 들여다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나아간다는 건 그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저 입장에 얼마든지 놓일 수 있으니, 제작하고 있는 감정카드가 잘 되더라도 자의식 과잉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를- 하며 조심하자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에 이 얘기를 들은 지인 B는, 한동안 그러데이션만 보면 '어…? 묘하네.' 하며 나를 불러댔다.
감정카드를 재정비하고, 텀블벅 오픈을 코앞에 두고 준비하는데 정말 위기가 찾아왔다.
우리와 같은 '감정카드'가 다른 플랫폼을 통해 오픈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견제라고 하기엔 너무나 존경스럽고 좋아하는 팀의 카드여서, 감히 우리가 '견제'라는 말을 쓸 수 없는 곳이다.
'감정카드'라는 콘셉트도 비슷하고, 오픈일정도 비슷했다.
카드 구성도 디자인도 너무 좋았다(실제로 우희가 이 카드를 펀딩 해서 나중에 팀원들과 함께 해봤는데, 역시나 너무 좋았다...!).
속상한 마음보다는, 너무 늦기 전에 감정카드 시장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과 우리 감정카드의 차별성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고민을 하면서 우리 카드도 서둘러 오픈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그 카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감정카드에 대해 알게 되고 더 대중화가 된다면, 우리 같은 작은 스튜디오의 감정카드를 더 안정적인 시장에 내보낼 수도 있었다. 이건 마케터 우희의 경험에서 나온 혜안이었다.
우리는 일정을 아예 늦추기로 했다(어찌 점점 늦어지는 펀딩 흑흑). 그리고 다른 감정카드들과의 뚜렷한 차별점인 '컬러로 알아보는 나의 감정'에 집중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펀딩 내용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양질의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공을 들였다. 텀블벅 내용도 이 카드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일러스트도 추가하며 상세 페이지를 더 전문적이고 완성도 있게 다듬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