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실물 카드 제작 착수
텀블벅 오픈은 지난 2021년 12월 중에 했지만, 사실 작년 여름 즈음 예정에 있었다. 그래서 샘플도 6월쯤 제작에 들어갔다.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플라스틱 카드가 아닌 두꺼운 종이로 된 부드러운 질감의 종이를 찾아봤다. 여러 샘플을 비교 분석해본 뒤 코로나도스티플과 켄도지로 결정을 하고 샘플 제작에 들어갔다. 명함사이즈의 96종이나 되는 카드를 제작하는 것이어서 1장씩 제작을 맡기면 단가도 비싸고 제작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 판에 여러 장을 인쇄해서 직접 재단기로 잘라냈다.
인내심을 가지고 잘라내야 하는 재단 작업.
앞으로 몇십몇 백개 세트를 만든다면 96개 한 세트 구성을 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어, 플라스틱 카드 제작도 알아보긴 했다. 그러나 단가도 너무 비싸기도 하고(만약 플라스틱으로 제작했다면 감정카드 세트는 10만 원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96장을 제작해주는 곳을 찾기도 어려웠다.
테두리도 코너 라운딩 기계로 하나하나 잘라냈다. 단순노동을 은근히 즐기는 나로선 꽤 즐거운 작업이었다. 똑- 똑- 잘려나가는 소리가 은근 쾌감이 있다.
처음 맡겼던 샘플은 코팅을 하지 않아서, 테이프 등을 붙이니 색이 벗겨졌다. 내구성과 두께감을 주기 위해 코팅을 넣기로 하고,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무광코팅으로 다시 발주를 넣었다. 그리고 또 재단하고 모서리를 잘라냈다.
*최종 제작된 카드는 일러스트, 감정 설명 등이 수정되었습니다.
전체 샘플을 촬영하기 위해 펼쳐봤는데, 카드들이 생각보다 너무 예뻤다. 예쁜 결과물을 만들기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는데, 카드들이 너무 예뻐서.. 잘 만들어진 건가 싶었다. 우희와 나는 검열을 자주 하는 친구들이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했다.
공부했던 내용들과 상충되는 부분은 없는지 미적인 것에 신경 쓰느라 감정의 의미와 벗어난 것들은 없는지를 살폈고, 혼자서도 플레이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많이 테스트를 해보았다. 감정카드 플레이를 처음 혼자서 해볼 때, 생각보다 색만 보고 고른 카드가 내가 느끼고 있는 명확하지 않았던 기분을 명확하게 만들어주어서 스스로 놀랐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빨리 다른 사람과도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다.
가장 처음 남자 친구와 함께 플레이를 해 봤다. 지금의 감정, 피하고 싶은 감정, 앞으로 자주 느끼고 싶은 감정을 뽑아보고 얘기를 해봤는데, 평소에도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지라 지금의 감정의 색들과 감정 군이 둘이 비슷하게 나와서 더 공감되고 신기하고 재밌었다.
지금의 감정에 대해 얘기해 본 뒤, 피하고 싶은 감정의 색을 뽑아봤다. 카드를 뽑아서 감정을 확인해보니 나는 '화남' 감정들이었고, 남자 친구는 '무서움'을 골랐다. 왜 그게 피하고 싶은 감정이냐 물었더니, 공포영화나 곤충이나 이런 것들을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서워하고 피한다는 얘길 해주었다. 그 외에는 딱히 피하고 싶은 경우는 없다고 했다. 새롭게 알게 된 면이었다.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엄청 피하고 소름 끼쳐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골 들판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곤충을 잘 잡기도 하고, 잘 보기도 하고 나비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도 내가 화가 나는 상황을 싫어한다. 또 미움받는 것과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내가 뽑은 감정들은 '화'와 '미움'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앞으로 더 자주 느끼고 싶은 감정은 둘 다 조금 더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색감들을 뽑았다. 잔잔한 일상에서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대화가 전보다 풍부해진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또 다른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카드들을 가지고 다양한 분들과 테스트도 해보고 자문을 받으며 보완할 점을 없는지 꼼꼼히 체크해나갔다. 텀블벅 오픈을 하기 전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테스트를 해봤는데, 기획자인 우희도 지인들과 감정카드 플레이를 해보고 의미 있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왔다. 확실히 다양한 모임을 하고 외향적인 성향의 활동을 하는 마케터이자 기획자인 그를 통해서, 다양한 의견들을 얻을 수 있었다.
96종의 카드는, 종류가 너무 많았다. 다른 감정카드 세트는 감정 군을 슬픔/기쁨/우울/화남 등으로 분류하여 판매하는데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다시 카드를 나눠보기도 하고, 분류하는 종이를 하나 더 끼워 넣을까? 케이스에 칸막이를 만들까? 하는 생각도 냈다. 우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캐릭터 투명 카드를 만들어서 분류도 하고, 내가 뽑을 카드를 귀엽게 캐릭터로 표현하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제로 제작된 투명 이모 카드는 감정카드와 너무 잘 어울렸다. 5가지로 분류할 수도 있고, 그 감정의 색에 맞는 이모의 모습을 대면 표정과 색이 찰떡같이 어울렸다. 하지만, 96장의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분류하는 건 사용성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싶었고, 무작위의 색 안에서 카드를 뽑는 게 오히려 다양한 감정들 안에서 눈에 들어오는 나의 감정을 뽑아낼 수 있어서, 분류를 하지 않고 사용하는 카드로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최종 이모 카드에는 분류 이름이 없고 캐릭터 표정만 있다.
종이는 두께감과 약간의 텍스쳐가 있는 켄도지로 결정을 하고, 투명 이모 카드도 2군데 제작을 해보고 최종 결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