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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Jun 16. 2024

묵묵히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한국 사회는 타인을 의식한 관계지향적 사고가 과다다. 한국은 취미에도 취향에도 정답이 있는 사회니까. 인터넷에서 접한 잊히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30대 남자가 입기에 XXX브랜드 이상한가요?


무슨 브랜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역시 댓글에는 정답들이 난무했다. 왜 브랜드마저 정답을 갈구하는 것인가. 패션에 정답은 없다. 물론 오답은 있다. 사회적 약속인 TPO다. 그 외엔 자신이 입고 싶은 디자인 입으면 되는 것 아닌가. 명품이든 보세든 내가 마음에 들면 사 입는 것이지. 왜 저런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모르겠다. 이만큼이나 척박한 사회임을 새삼스레 느낄 때마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본인에게 집중하며 자신의 업이나 인생 자체의 자부심을 유지해 나가는 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집에서 7km 거리에 단골카페가 있다. 블루마운틴, 루왁 등 희귀한 초고가 원두를 제외하면 다양한 대륙에서 건너온 원두를 맛볼 수 있다. 사장님은 커피를 사랑하시는 만큼 본인 커피에 대한 자부심도 어마어마하다. 거듭된 시도를 통해 원두마다 적절한 로스팅 정도 드립 시간, 추출 물 온도 등을 알아내서 손님들에게 추천해 주신다. 몇 년 전에는 사장님이 다른 손님과 나누시는 대화를 들은 적 있다. 누군가 10년 동안 커피값을 인상하지 않냐고 물었다.

신경 써서 내린 커피를 한 분이라도 더 맛보는 것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자부심은 사회도 행복하게 만든다. 만약 근처에 좋지 않은 원두를 취급하는 카페 있었다면 나는 아직도 맛있는 커피 맛을 모를 것이다. 주변에 자부심 넘치는 빵집도 있으면 좋겠고, 정육점도 있으면 좋겠다. 일상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부심들에게 더 큰 대가와 좋은 대우가 돌아가길 희망한다. 나도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존경을 표할 의사가 있다. 영화와 음악 그리고 책도 다 마찬가지다. 자부심에서 비롯된 뛰어난 성과들은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요즘 빠져있는 생각 중 하나는 개인의 삶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은 자부심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능력이나 자질만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지만, 사회 면면을 들여다보니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부심 같다. 직업적 영역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직업적 영역의 자부심은 업에 대한 프로의식에 한한다. 본질적 자부심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다. 프로의식은 물론이고 책임감, 품격, 도덕의식 등 개인을 이루는 중요 요소들 자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자부심이 큰 사람은 본인의 삶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자연스레 타인의 삶도 소중하게 대한다. 갑질은 본인의 존재가치를 타인을 통해서 찾는 자들이 저지르는 짓이다. 자부심을 똑바로 가진 사람은 신호 위반 한번 허투루 할 수 없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신독과 같은 맥락이다.


자부심을 바탕으로 삶을 대하는 방식은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에 등장하는 개인주의적 사고유사하다. 조지 헨릭은 동양의 관계지향적 태도와 상반된 개념으로 서양의 개인주의적 사고를 언급했다. 그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서구 사회의 발전 동력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동양의 관계지향적 태도는 수치심에 영향을 받는다. 수치심은 타인이 있어야 성립한다. 관계 지향적 사회의 구성원들은 타인 시선을 항상 의식하고 비난을 두려워한다.


이에 반해 서양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수치심보다는 죄책감에 영향을 받는다. 죄책감은 홀로 느끼는 감정이다. 개인주의적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타인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청교도적 전통에 따른 신 앞의 양심이다. 곧 자신만의 양심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개인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판단 기준이 타인의 시선인지 아니면 자신의 양심인지에 따라 사회 양상은 달라진다.


대화를 들은 사장님 원두 품종마다 적당한 시간을 고려하여 로스팅하고 불량 원두를 묵묵히 골라내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난 구름 낀 아침보다 별빛의 밤이 좋다.
혀를 차고 눈앞엔 거짓이 가득해도 Only God Can Judge Me.

- 리쌍의 <난 말이야> 중에서-


* 사진: Unsplashأخٌ‌في‌الل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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