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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d Fashioned NuBoi Mar 17. 2022

얻으려다 잊어버린 것

많은 사람들이 성장통이라 말하는 가장 개인적인 경험

  흐린 날이 주는 차분함 사이에서 가고 싶었던 카페로 발을 옮겼지만, 오늘은 문을 열지 않았다. 계획이 틀어지면 다른 곳은 썩 내키지가 않는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또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결국 6년 동안 가지 않았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딱히 이 공간에 큰 문제가 있어서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통 괜찮은 자리는 꽉 차있고, 자리를 잡는다 해도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이곳을 자주 오던 1학년 때 이 장소에 대한 기억은 프레첼과 커피를 먹고 엎드려 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렴풋하게 그녀의 실루엣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땐 스무 살이라는 핑계로 어리숙한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는, 사파이어빛 검푸른 눈과 약간은 발그레한 복숭아 같은 볼이 예쁜 사람이었다. 지저분한 피부, 평범한 키를 가진 안경잡이였던 그 당시 나랑은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 같았다. 운이 좋게도 그녀와 가까워지고, 푸르던 잎이 분홍빛 벚꽃으로 물들어 갈 때쯤, 나름의 결심이 섰다. 난 그녈 좋아한다. 이름 석 자에 가슴이 뛴다.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 다음 날 수업에서 졸더라도 그녀와 새벽 네 시까지 나눈 수다가 더 중요했다. 팔자에도 없던 하이틴의 색감 속에서 그렇게 한 달을 살았나보다.


    온점을 찍었어야 했다. 만연체는 지루해진다. 본질은 흐려지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나조차 잊게 된다. 결국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문장 속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당시에는 방해요소의 탓으로 돌리며  사랑은 풀리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안다. 방해요소가 없었어도  그녀에게  마음을 말로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있었다면 마지막 기회였던 공원 벤치에서 아무  못하고 기숙사로 들어가진 않았겠지. 4 가까이 시간이 흘렀을 무렵,  친구가 말했다. 바보같이 질질 끌지만 않았어도. 맞다. 결국 온전히  판단에 의한 선택으로 벌어진 결과다. ‘인생은 안전빵’.   가지 좌우명  하나다. 굳이  위험수를 두면서까지 무엇을 쟁취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거절이 불러올 후폭풍,  복잡해질 인간관계, 들려올 나에 대한 이야기 등등 불안요소들이 줄줄이 머릿속으로 입력된다. 길고 복잡한 생각은 길고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사랑이 만연체로 결국 온점을 찍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바닥을 치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자존감도 한 몫 한다. 결국 모든 우려와 위험은 ‘거절’이라는 결과에서 파생된다. 그리고 난 그 거절을 당할 확률이 높다는 전제를 항상 깔아두고 산다. 난 그런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나름의 발악을 해왔다. 반 포기했던 피부를 가꿨다. 내 개성에 맞는 옷과 머리를 찾아 오랜 시간 고민하고 만들어 나갔다. 성숙한 가치관을 갖기 위해, 여유로운 자세를 가지기 위해 강박증 치료도 받고,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치열하게 아파하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을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우선순위에서 ‘나’라는 존재가 앞서가기 시작했고, 내 모습과 내 생각들,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을 꽤 좋아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나를 이렇게 키워왔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문제가 생겼다.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아이돌을 왜 좋아하지? 단순히 이쁘고 매력적이어서?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6년전의 그녀는 연예인만큼 이쁘지 않았지만, 난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때 그런 사랑은 어떻게 한 걸까? 이성적인 호감이나 매력적인 끌림은 당연히 지금도 느낀다. 인간은 탐미적인 동물임을 믿는 내겐 매우 당연하게 본능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존재만으로 웃음을 만들어내고, 심장을 떨리게 하고, 내 시야에 비친 세상이 비비드한 톤으로 비춰지게 하는 그런 감정.


  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언젠가 내게 그런 감정을 다시금 느끼게 해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6년 전 그 사랑에 나를 과소비해서 그런 거라면, 나라는 존재가 충전될 때쯤엔 자연스레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내가 사랑에 무뎌진 거라면, 언젠가 다시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도 잠을 설치는 날이 다시 오지 않을까. 아마 그 전까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그녀일 테고, 여전히 난 친구들의 연애 안하냐는 질문에 “할 때 되면 하겠지”라고 답하게 될 것 같다.


글. 2021년 어느 겨울

사진. 이른 봄의 홍대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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