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 일이나 취미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지인 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것 중 하나가 집에 초대해 밥 한 끼를 함께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적인 공간에 기꺼이 타인을 들이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집주인의 취향과 하루하루가 스민 공간에 초대받아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의 온기가 2도 올라가는 느낌이다.
나를 기꺼이 집으로 초대해 주었던 지인들,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 손님을 위해 깔끔하게 청소된 집에 대한 좋은 기억과 고마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이곳에 살며 만난 사람들과 집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인종도 문화도 다양한 실리콘밸리 집 구경은 새로운 문화에 눈을 뜨는 시간이기도 했다.
1. Cambrian Park 단아한 가정집
캠브리안 파크(Cambrian Park)는 Campbell, Willow Glen 근처에 위치한 동네로 학군도 좋고 교통도 편리해 집값이 건강하게 오르고 있는 곳이다. 학군 좋은 쿠퍼티노와 팔로알토는 학구열 높은 동양인(dragon parents) 가족이 몰려 집값이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면, Cambrian Park는 최근 몇 년 사이 떠오르는 알짜배기 동네다.
집 살 생각은 1도 없었던 철없는 나에게 “이 사람아, 집 살 생각을 해야지, 왜 차를 사?”라며 일침을 놓아 정신 번쩍 차리게 해 준 고마운 언니. 그녀가 여름 바비큐 파티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도착해 보니 돼지고기, 소고기 바비큐와 귀하게 모신 한국 반찬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남편분이 바비큐를 준비하고, 언니는 밥, 반찬, 야채, 디저트를 준비해 주셨다.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에 장꾸력이 폭발하는 꼬맹이의 수다까지 곁들여져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정성스럽게 차린 바비큐 한 상
수리할 게 많았던 집이었지만, 지역 및 크기에 비해 가격이 괜찮아서 일단 매입한 후 언니가 주방 수납장 문고리까지 하나하나 다 골라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홈디포에 인테리어 부속품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는데 애먹었다고. 사진 속 나무 펜스도 리모델링한 것인데, 미국의 나무 펜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같이 거무튀튀한 갈색이다. 우리 집 크고 작은 수리를 도와주셨던 아저씨를 소개해 드리기도 했다. 밝은 나무색으로 싹 단장된 펜스가 보기 좋았다.
밝은 나무색으로 단장된 펜스, 디저트 타임
나 못지않게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언니는 실내 식물뿐 아니라, 먹을 수 있는 텃밭 작물도 많이 기르고 있다. 그 영향인지 꼬맹이도 식물을 너무 좋아하고 마당에 물도 자주 준다고. 세 가족의 단란하게 사는 모습이 따뜻해 보였던 예쁘고 정갈한 싱글하우스.
2. 학군 좋은 동네 Saratoga 2층 콘도
사라토가(Saratoga)도 위치와 학군, 자연환경이 좋은 동네다. 넘사벽 집값인 쿠퍼티노와 팔로알토에 비해 사라토가는 벌이가 괜찮고 학군이 집 선택에 중요한 요소라면 고려해 볼 만한 동네다.
지금은 다른 회사로 이직한 예전 회사 동료가 땡스기빙을 맞아 베이 지역(Bay area)에 살고 있는 팀원들을 초대해 주었다. 인도식 땡스기빙 디너라며, 다양한 인도 음식을 준비해 주었다. 메인 코스에 들어가기 전, 애피타이저 보드도 알차게 내어와 감탄을 자아냈다.
깔끔한 애피타이저 보드, 정성이 가득 담긴 인도식 땡스기빙 디너
2층 콘도로 천장이 높고 벽 페인트 색이 밝아 집이 굉장히 넓어 보였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과 중간중간에 놓인 식물들이 따뜻한 공간을 연출했다. 밖에 코쿤 모양의 의자도 걸려있었다. 베란다 아래로 넓은 수영장이 보여, 여기서 책 읽으면 꼭 와이키키 비치에 온 거 못지않겠다고 부러움의 멘트를 날렸다. 디저트는 2시간 동안 직접 우려낸 인도 차이(Chai)로 마무리.
베란다에 달린 코쿤, 이 집주인도 식집사, 2시간 동안 우려낸 차이
3. San Carlos 4B2B 싱글하우스
아파트에서 살다가 리즈가 끝나 다른 집을 찾고 있는 동료에게, 소음 심한 아파트 말고 타운하우스나 싱글하우스 렌트하는 게 훨씬 낫다고 여러 번 얘기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파트가 좋다던 동료는 내 말에 대해 생각해 봤는지 Craigslist와 Zillow를 폭풍 검색하더니 결국 싱글하우스를 렌트하기로 결심했다. 산카를로스(San Carlos)는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중간 위치에 있는 도시로, 가까운 도시로는 산마테오(San Mateo)와 포스터 시티(Foster City) 등이 있다. 풍부한 자연환경과 와이프 회사와 본인 회사의 중간 지점에 있어 이곳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넓은 뒷마당, 레몬 트리, 깔끔한 실내
팀 오프사이트로 인도에서 팀원들이 날아와,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모든 팀원 합체! 구석구석 집 구경도 시켜주고 인도 음식과 디저트를 마음껏 먹도록 준비해 두었다. 꽤 넓은 뒷마당과 함께, 방이 무려 네 개나 있는 싱글하우스라 인도 가족들이 와서 지내기에도 딱 좋다고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인도식 가정식과 디저트
4. Sunnyvale 이동식 주택(Mobile House)
미국의 집 형태 중에는 이동식 주택(Mobile House)도 있다.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바퀴 달린 집을 기억하는가? 트레일러 하우스라고도 하는데 <미나리>에서는 집이 풀밭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지만, 이동식 주택 단지에 가면 이런 집들이 촘촘히 붙어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이동식 주택 단지도 미국에 있는 주택 형태이며 수영장, 테니스장, 클럽하우스 등이 갖춰진 안전한 커뮤니티다. 싱글하우스 대비 가격이 저렴해, 고소득자가 아니라도 모기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선이었다. 다른 주에 이미 집이 있는데 세컨드 하우스가 필요한 직장인이 옵션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주택 형태다.
이동식 주택 단지(Mobile House Community) 모습
핼러윈을 맞아 단장한 집, 주택 단지 풍경
5. 실리콘밸리의 비버리힐즈, San Ramon 고급 주택 단지
이곳은 산라몬(San Ramon)이라는 동네다. 실리콘밸리 빅 테크가 몰려있는 마운틴뷰-서니베일-산타클라라-산호세 벨트와는 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학군이 좋고 자연환경이 좋은 부촌이다.
회사 동료가 독일식 바비큐 파티를 열겠다며 팀원들을 초대했다. 고급 주택 단지라 그런지 ‘gated community’였다. 게이트 앞에서 경비가 내 이름과 초대자의 이름을 물어보고 그와 통화를 하고서야 들여보내 주었다. 햇살에 맑은 물이 반짝이는 수영장, 산 뒤로 넘어가는 석양이 바로 보이는 탁 트인 경치를 보고 있자니, 먼 길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좋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고속도로를 탔다.
미니 인피니티 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San Ramon 주택단지 뷰 - 오후
6. Los Altos, 아름드리나무와 탁 트인 뜰이 있는 집
로스 알토스(Los Altos) 또한 실리콘밸리의 부촌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다른 동네에 비해 싱글하우스 면적이 넓은 편이고 마당 넓은 대저택도 여기저기 보인다. 산책로가 잘 발달되어 있고 백인이 많이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져 숲 속에 사는 느낌
이곳에도 회사 바비큐 파티가 있어 갔는데 널찍한 정원이 좋아 보였다. Dish Dash라는 지중해식 레스토랑에서 케이터링 한 메인 코스와 디저트 모두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큰 정원을 어떻게 관리하냐고 물어보니, 그냥 “let them grow”한다고 여유 있게 농담을 한다. 여름에 청설모 가족이 출현해 가지를 죄다 떨어뜨려 놓고 가면 치우기 힘들다며 정원사가 한 달에 두 번 정도 온다고 했다. 줌 미팅에서만 보던 회사 동료들을 밖에서 만나니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저녁이었다.
탁 뜨인 뜰이 있어 야외 결혼식장으로 렌트해도 되겠다는 농담이 오갔다
이곳에 살며 감사하게도 참 다양한 집에 초대를 받았다. 어떤 집은 뒷마당과 미니 그린 하우스까지 갖추고 있어 식집사의 로망을 끝도 없이 부풀게 했고, 연말 크리스마스 장식을 너무 깔끔하게 해 감탄을 자아냈던 집도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풍성한 수다가 오가는 지인 집 방문은 나를 항상 설레게 한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지인의 취향에 대해 힌트를 얻기도 하고, 집꾸 아이디어를 건지기도 하고, 나 또한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을 잡기도 한다. 이번 땡스기빙에는 그동안 나를 집에 초대해 따뜻이 맞아주었던 지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한번 대접해야지 하고 있다. 지금은 놀러 온 이들에게 아포가토 및 지나쥬르 표 라테를 대접하며 산호세 커피 맛집으로 거듭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