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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Jun 17. 2024

마지막 여행

빈 손으로 가야 하는 가벼운 그곳,

   신생아가 하루 종일 잠을 자듯이, 어머니는 60일간 긴 잠을 자고 또 잔다. 세상 걱정 없이 뒤척이지도 않고 쌕쌕거리며 단잠을 잔다.  달 전까지만 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던 어머니, 불면을 호소하면서도 치매가 올까 봐 수면제는 먹지 않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골면서 숙면을 취하고 있다. 96년 간 기나긴 여행이 고단했나 보다. 아니면 부지런히 일하느라 그동안 못 잔 시간을 채우려는 것일까. 마지막 여행의 준비인가. 이제 머지않은 때 어머니가 타야 할 기차가 올 것이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엄마, 우리 우리 5남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사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

어머니 귓전에 가까이 가서 큰소리로 말하면 눈을 슬며시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 완전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인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잠이나 자고 있다니.


  2024년 6월 6일, 여명이 비치기 시작할 무렵, 하늘 가는 구원 열차는 순식간에 도착했다. 어머니의 영혼은 육신의 발끝에서 출발에서 이마에 잠시 온기로 머물다가 서둘러 천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어머니는 잘 있어라 말 한마디 없이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사람들은 어머니 장례식을 천수를 누리고 가는 호상이라고 한다. 찬송과 말씀과 기도, 위로가 장례식장에 가득하다. 멋모르는 증손자들은 장례식장 안을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오시는 손님들도 표정이 크게 무겁지가 않다. 사람을 좋아하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그렇게 반겨하시던 어머니, 이렇게 손님이 많은데 좋아하실는지. 어머니는 누가 온다고 한 날은 아침부터 기다리기 시작한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셨고, 꿋꿋하고 단정하셨다. 기억력도 좋아서 집안의 대소사를 다 챙겼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잠만 자기 전까지는, 뼈만 남은 몸으로도 보행기를 잡고 혼자 화장실을 다녔다. 우리의 부축도 마다하였다. "내 혼자 할 수 있다."며 기어이 혼자 해냈다. 목욕을 한 후 자신의 옷은 직접 빨아서 널었고 식사를 챙겨 드시고 그릇을 꼭 씻어서 엎어 놓곤 했다. 온몸의 살과 근육이 다 빠져 어떻게 생명이 살아 있나 싶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까지도,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는 정신력 하나로 육체를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평생의 삶이 그랬듯 마지막 한 순간까지 최선의 삶을 살고 마무리했다.


  일제강점기와 남북전쟁을 다 겪은 어머니의 일생은 한없이 가엾다. 어머니는 육체적 고통 보다, 아버지의 따뜻한 배려와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한이 맺힌 것 같았다. 어머니의 생전에 그 한을 풀어 드리고 싶었다. 만날 때마다 몇 번씩 되풀이되는 똑같은 이야기를, 처음 듣는 듯 가만히 들었고,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감싸듯 가만히 안아 드렸다. 가끔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듯이 꺼억꺼억 목울음을 토해내고는 함께 두 손 잡고 울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말수는 줄어들었고 '이제 더 말하기 싫다.'며 시들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굽이굽이 애닮은 사연들을 틈틈이 글로 쓰고자 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녹음을 해서 뒤에 글로 옮기리라 했고, 책으로 만들어 마지막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내 마음의 영웅으로 어머니와 함께한 흔적을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실수로 녹음해 두었던 핸드폰의 기록들이 다 지워졌고, 그동안 써둔 몇 편 글도 날아가 버렸다. 내 기억은 살아나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았다.


 한 줌의 재로 돌아가 본향으로 떠나시던 날, 하늘은 소나기 한 묶음 풀어 눈물로 내렸다. 그동안 고단했던 어머니의 삶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큰 언니는 건강이 안 좋아 마지막 어머니 가시는 것 보지 못하고 전화가 왔다. "꿈에 엄마가 말하더라. 가볍다, 고맙다, 나는 편하다고 하시면서 가시더라."라고. 거창군 북상면 선영 납골당, 아버지 옆에 모셨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좀 더 자주 찾아뵐 걸, 좀 더 자주 안아드릴 걸 하는 후회스러움과 어머니의 살아온 일생이 허공 속에 흩어져 버리는 허망함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게 아프다.


생전에 아버지 옆에 가지 않겠다던 어머니, 이제 더 이상 미움도, 괴로움도, 분노도 없는 순전 무구한 영혼으로 돌아갔기에 아버지와 편한 마음으로 천국에서 만날 것이다. 길가에 하얀 치자꽃, 어머니의 향기인 코끝에 스쳐간다. 어머니의 맑은 찬송 소리가 내 마음에 들려온다.

'눈물 골짜기 더듬으면서 나의 갈길 다간 후에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주와 함께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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