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에릭 에릭슨, 그때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멀쩡하게 잘 살아왔다.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니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분노, 두려움, 슬픔, 서러움이 상처 난 가슴을 찌른다.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공허감이 몰려온다. 자기 안에 그동안 억압해 두었던 내면 아이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나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살고 있다. 인간의 발달단계 어느 시점에서 충분히 양육되어 습득해야할 덕목이나 성장해야할 인격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더 이상 아이는 자라지 못하고 고착되어 성장이 멈춰버린다. 육체는 자라더라도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내면 어린아이는 두려움과 공상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무의식으로 현재 나의 삶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일생을 거쳐서 심리적, 사회적 위기를 겪는다. 위기를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서 어떤 믿음이나 성향이 생긴다. 그러한 믿음의 성향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것이 인간의 전생애를 통해서 단계별로 발달하는 인격이다. 

 인간은 자아를 통해 일평생 동안 환경과 지속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인격을 형성한다. 이를 에릭 에릭슨은 사람의 '심리 사회적 발달단계'라 하고  8단계로 구분한다. 단계별 발달해야 할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이 멈추고 깊숙이 억압되어 있던 내면아이는 전생애를 통해 지금 - 여기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 발달 8단계는 연대기 순서로 진행된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아기, 유아기, 학령전기, 학령기, 청소년기, 성인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한 개인의 발달을 8단계로 이해한다. 

 물론 개인별로 시기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환경과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단계가 강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단계별로 형성되는 한 단계가 성공하면 다음 단계도 성공할 힘을 얻는다. 한 단계가 미해결되면 다음 단계 과제를 해결할 힘이 약하다. 전단계에 고착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릴 적 깊은 상처가 있더라도, 다음 단계에서 마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내면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좋은 환경을 만나면 치유가 가능하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상처 입은 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어 정서적 안정감을 주었을 때 지금 성장한 어른으로 살아볼 용기를 얻고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찾아내어 어느 단계의 미해결과제를 안고 있는지 탐색하여 알아차리고, 지속적 관심을 가진다면 새로운 자아를 만날 수 있다.

  각 단계별로 위기를 대처했을 때 긍정의 힘과 부정의 힘이 생긴다. 긍정의 힘이 무조건 좋고 부정의 약함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둘 사이의 비율 조화가 중요하다. 서로 간의 우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단계별 발달 이슈에 있어 결핍도 문제지만 과잉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1단계에서 신뢰 대 불신의 발달 비율이 지나치게 한 곳으로 쏠릴 수 있는 양육자 또는 환경에서 자라게 될 때, 습득되는 덕목인 희망을 취득하지 못하면  8단계에서 통합이 이루기 어렵다. 

 우리는 누구나 자라면서 결핍을 경험한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의 부모가 완벽한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착, 통제, 정서적 학대, 방임, 폭력, 지독한 가난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에릭슨의 발달과업을 완벽하게 이룬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의 크고 작은 상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