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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Oct 15. 2024

너의 마음이 궁금해

과학시간입니다

  초등 6학년 과학교실이다. 수업방해학생지도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시작한 지 4개월에 접어든다.  그동안 1학년 반에 참여해 왔는데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은 6학년 반에 들어가기로 했다. 멀리 무지개 찾아 떠났다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 느낌이다. 나의 초등 6학년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다만 배우는 것이 즐거웠고 선생님은 무서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수업방해학생지도는 직접 수업하는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교사를 돕거나, 학생의 수업방해 행동이 너무 심해서  교실 밖에 나가야 할 때 아이를 함께 데리고 있으면서 지도를 하거나, 학생이 상담실이나 교장실에 갈 때 함께 동행하기도 한다. 

 오늘 내가 맡은 아이는 남학생 지석이다. 지석이는 덩치가 크고 서글서글한 눈매에 약간 피부가 가무 짭짭하다. 걸을 때 성큼성큼 걸어서 내가 뛰듯이 걸어야 따라갈 수 있다.

 "지석이가 수업할 때 다른 학생 수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이 처음에는 의아했다. 친구들이랑 웃으며 장난치고 있는 모습이나 인사하는 태도는 크게 다른 일반 아이들과 다름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과학 선생님은 발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가르치고 있었다. 불이 붙으려면 탈 수 있는 물질, 산소, 발화점 세 가지가 맞아질 때 불이 일어난다. 다시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학생이 된 것 같아 학구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지석이를 잘 살피면서 책 페이지도 펴주고 말도 걸면서 호흡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과학선생님이 직접 불이 닿지 않아도 산소와 발화점이 맞아지면 대상에 불이 붙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을 하였다. 발화점에 관한 실험이다. 발화점이란 불이 붙는 온도이다. 종이는 빨리 불이 붙고 나무는 빨리 불이 붙지 않는 현상이다. 촛불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화약이 묻은 성냥을 두고, 왼쪽에는 나무인 성냥개비를 클립에 찍어서 두었더니, 불이 직접 닿지 않았는데 화약 묻은 성냥이 먼저 불이 붙었다.


 산소여부에 관한 실험으로는 불이 붙은 촛불에 하나는 산소가 발생되는 작은 비커를 넣고, 하나는 그냥 촛불을 두고 두 촛불에 똑같이 큰 실험용 비커를 덮었다. 결과는 산소가 발생되는 것은 오래 꺼지지 않았고, 산소가 없는 촛불은 금방 꺼졌다.


 지석이를 보며 책을 가리키고 칠판을 손짓하며 작은 소리로 설명을 해주었다.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주변 학생들 의식해서 조용히 말을 했다. 옛날과 다르게 지금의 교실은 자유분방하다. 아이들 의견을 마음껏 내고 시끄럽다. 어쩌면 내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다. 

 지석이의 관심은 친구들에게 있다. 실험에서도 행동으로 하는 것은 자기가 할 거라고 우기기도 했다. 초에 불을 붙이는 거나 과산화수소를 싱크대에 버리는 일 같은 것은 자기가 할 거라고 했다. 과산화수소는 위험해서 다른 친구가 하도록 하고, 지석이는 촛불에 불을 붙여 보라고 했더니 잘했다.


 선생님이 '시스투스'라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 식물은 다른 식물이 주위에 많이 자라나면 스트레스로 휘발성 기름 성분을 분비한다. 이 물질은 기온이 35도가 되면 발화점이 되어 불이 나서 주변을 태우고 큰 화재로 확산될 가능성이 많다. 모로코, 포르투갈 등에서 많이 야생한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지석이가,

"나는 불이 나면 나오지 않고 안에 그대로 있을 거야. 그대로 죽을 거야. 그래야 나를 아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죽어버릴 거야."라고 혼잣말로 몇 번 되뇐다. 

 쉬는 시간이 되자 지석이는 남학생 친구들에게 툭툭 치면서 장난을 걸기도 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면서 욕을 하기도 한다. 내가 지석이 손을 잡으면서,

"지석아, 좋은 말 예쁜 말을 써야 멋진 지석이가 될 거야." 하니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운동장에 나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는 규칙이 있는데도 지석이는 막무가내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재미가 든 걸까. 혼자서 버젓이 타고 내려온다. 


 쉬는 시간에 이층에서 내려다보니 그네를 타는 친구들을 계속 붙잡기도 하고 그네 앞에서, 뒤에서 방해를 놓기도 한다. 이 아이의 마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담은 받고 있을까. 약은 먹고 있을까. 혼자서 이리저리 궁리한다. 자원봉사자인 나의 신분이 깊이 관여할 역할이 아니기에 그저 안타깝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지석이를 도와주고 싶다. 지석이가 배우지 못한 과학 공부를 내가 해서 지석이에게 넘겨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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