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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Nov 04. 2024

프롤로그

<엄마는 떠났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따르릉 따르 따르 따르릉

 아직 사위는 푸르스럼하다. 여명이 희미하게 비춰오는 2024년 6월 6일 이른 아침, 잠결에 눈을 번쩍 뜨자 전화소리가 울렸다.  '올 것이 왔구나' 예감은 적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

 올케의 다급하고 울먹이는 목소리에 양말도, 윗옷도 뒤집어진 것도 모르고 엄마 집으로 달려갔다. 정자나무를 지나 골목을 들어서는데, 창이 큰 모자를 쓰고 산밭을 가는 엄마가 내 앞에 걸어오는 것 같았다. 골목 어귀 마다 엄마의 발자국이 스며들어 있어 환히 웃는 모습과 말소리가 뒤에 들리는 것 같다.  허겁지겁 대문을 열고, 신발을 벗어던지고, 방문을 열어, 엄마를 껴안고, 이마에 손을 대니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

'엄마 엄마 엄마'

 가슴 깊숙이 고여 있던 엄마를 향한 애달픈 마음은 분수 꼭지를 열자 솟아오르는 물줄기처럼 치솟아 올라왔다. 나는 울음을 토해 내지 못했다. 목울대에서 걸려 짐승 울음처럼 그르렁거렸다. 엄마의 육신은 다 타버린 장작처럼 하얗게 재가되어 누워있다. 


 <온전히 불태운 일생>

 그렇다. 엄마는 당신의 삶을 온전히 마지막 남은 1% 힘마저 다 불태웠다. 82세까지 엄마는 비탈진 산밭을 오르내리며 농사일을 했다. 산밭에서만은 엄마가 마음껏 호령할 수 있는 공간이자 온전한 주인이었기에, '이제 좀 쉬고 그만하라'는 자식들의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엄마를 존중해 드렸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를 말리기를 포기하고 엄마의 자존심인 산밭일을 도와드리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산밭을 올라 거름을 뿌리는 일이나 잡초를 뽑는 일, 다 자란 채소를 뽑아 옮기는 일 등을 도와드렸다. 엄마랑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놀란다. 항상 먼저 지치는 쪽은 나다. 엄마는 키가 자그마하다. 뼈대도 굵은 편이 아니고 야리야리하다. 그런데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리어카에 채소를 가득 싣고 언덕을 내려오는 일이나, 시장에 가는 길의 경사진 언덕을 올라갈 때 밀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힘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 통달 경지에 오른 사람 같다.  


<이제야 내 차지>

 그러던 엄마가 82세가 된 어느 날인가부터 아픈 다리로는 더 이상 산밭을 오르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엄마를 만나서 느긋하게 둘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퇴직을 한 후에는 시간이 날 때나 일요일이면 오빠 내외와 살고 있는 엄마집을 방문했다. 그냥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하루종일 느긋하게 둘이서 얼굴 마주 보고 지냈다. 아픈 허리와 다리에 파스를 붙여드리고, 찌릿찌릿한 발바닥을 눌러주었다. 하루 종일 TV도 보고 밥도 먹고 엄마가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에 빠져들기도 했다.

 엄마는 여태까지 꼭꼭 마음에 싸매둔 살아온 묵직한 이야기보따리를 무장해제한 듯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늘 일하느라 이렇게 마주 보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어릴 적부터 엄마가 온전히 내 차지가 된 적이 없었다.  수십 년을 우리 자식들 앞에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던 엄마인데 이제 몸과 마음이 약해진 탓인지, 지난 세월 가슴에 응어리 진 사연들을, 굽이굽이 살아온 한 맺힌 이야기들을 속울음 삼키면서 토해냈다. 그럴 때는 가만히 안아드리며 등을 토닥거려 드릴 뿐이다. 나는 뼈만 남은 앙상한 엄마의 가슴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을 아프게 느끼곤 했다.


<가슴에 박힌 못>

  나는 엄마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가슴에 박힌 못을 빼 드리고 싶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엄마의 서러움은 어디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꽈리를 틀고 있는 슬픔을 해체해 드리고 싶었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면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함께 울고 함께 화를 냈다. 여태까지 고생만 한 엄마, 남은 여생은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가 이 세상 잘 살았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다 내려놓고 훨훨 하늘나라로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엄마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남존여비 문화시대에 여자로서 엄마가 살아온 세월은 팍팍하다 못해 순간순간이 낭떠러지 앞에 선 절박함이었다.

 역사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내일 땟거리가 없는 가난 앞에서, 엄마는 비바람 부는 광야에 선 흔들리는 작은 들풀이었다. 알아주는 이 없고, 따뜻한 위로 건네는 이 없어도 그저 묵묵히 있는 그대로 인생을 살아온 촌부였다.    

  엄마와 하루 이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삶을 치열하게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한 나의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가슴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엄마의 인생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화려한 장미꽃은 아니지만,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성공신화가 아니지만, 강가에 피어난 개망초처럼 수수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꽃을 피운 성공한 삶이었음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나는 엄마가 걸어온 삶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구슬을 꿰듯이 자음 모음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생전에 엄마의 두 손에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글로 써둔 파일이 삭제가 되어 복원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내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다시 엄마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더 이상 이제 하고 싶지도 않고 이제 다 지난 이야기이고, 말을 하고 나니 시들해졌다."며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난 뒤, 나는 살아계실 때 좀 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가슴이 아팠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책을  만들어드리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늘 숙제하지 못한 아이처럼 가슴 한쪽이 묵직했다. 기억에 의존하여 더듬더듬 글을 쓰려고 해도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고 마음만 조급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엄마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적어두었던 메모지 십여 장을 발견했다. 나는 메모지에 적힌 이야기 단초별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의 영웅입니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위기 때 나라를 구한 인물도 많다. 그들을 후손에게 길이 남기기 위해 수많은 책들이 나왔다. 이 글은 신순옥이란 이름 석자, 마지막 가는 길 장례식장에 올라간 것과 교회 주보에 몇 번 올라간 것밖에 없는, 가족 외에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나의 엄마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주고 싶어 쓴 이야기이다. 그저 자연에서 나는 것, 땅에서 정성껏 키워서 다른 사람에게 팔아 생계를 이어온 힘겹게 살아온 촌부의 이야기이다. 오로지 다른 곳에 눈을 돌려보지 못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융통성 없는 나의 엄마 이야기다. 하늘나라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존재하고 있을 엄마에게는 실없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엄마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엄마가 사라져 소멸하는 것이 안타까워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일생이 성공한 일생이었다는 것을 엄지 척으로 알려드리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와도 서러움이 아닌 그리움으로 되뇔 수 있도록, 

눈물이 아닌 지긋한 미소로, 따뜻한 온기로 엄마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한스러움이나 자책, 상처가 아니라 소중하고 보물 같은 엄마를 가슴에 품어도 아프지 않도록, 

그렇게 응어리를 용해시키는 과정이었다.


엄마,

당신의 인생은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2024년 12월, 지리산 산청 <향기로운 새싹의 집> 운아당에서

                                                                      임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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