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찾아온 사춘기
23년 1월 27일,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40이 넘었다. 나이를 헤아릴 때마다 내 나이 드는지 모른다는 말에 절대 공감하게 됐다. 생애주기별 고비를 모두 잘 넘겼다고 할 순 없지만 그때마다 나름 최선을 다한 건 맞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인생에서 남들 다하는 숙제를 하나씩 하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면 그 시기에 맞는 모습을 자연스레 갖추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다! '어쩌다 어른'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결혼에 앞서 우리 부부는 '대충' 어른이 되지 말자고 했다. 정해진 어른의 조건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시간을 보내고 어른 흉내를 내진 말자고 했다. 어른인 척하지 말고 진짜 어른이 되자는 뜻이었다. 삶에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철저히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존재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껏 어른다운 어른을 만난 경험은 많지 않다.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 사회적으로 공인된 경력 등이 화려한 이는 많았으나 그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은 적었다.
여기서 어른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힌 이유는 160일을 갓 넘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서다. 좋은 인간으로 아이가 잘 따를 수 있는 (완전무결할 순 없지만) 표본이 되고 싶다. 결혼을 하고 또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내 삶에 진정한 목표를 갖게 된 셈이다! 그간 삶의 과업에 비교적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임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돌아보니 막연히 주어진 선택지에서 그럴싸한 답만 고르며 살아왔다. 또 '주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안전한 선택지만 골랐다.
한편으로 일종의 '인생 성적표'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도 쉽게 답하기 어렵다. 왜냐면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적 즉 사회경제적 지위 등 가시적 결과가 제출한 과제에 대한 절대 평가치는 아니어서다. 하나 더 큰 문제는 누가 누구를 평가하느냐다. 성공을 구성하는 요인은 주로 사회에서 이뤄낸 외적 성취로, 기존 구성원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대다수 그렇듯 우리는 '인정 투쟁’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일정 역할을 요구하는 학교, 직장 등에서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바를 충실히 수행한다.
역할의 무게와 관계없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기준'은 늘 존재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에 맞추는데 바빴고, 임의의 잣대에는 큰 의심을 품지 않았다. 주어진 기준을 그대로 수용하고 거기에 맞춰 기대되는 성과를 내는데 급급했다. 운 좋게도 우리는 현재, 어느 정도 합의된 기준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우리를 찾아온 후로는 삶의 소중한 시간을 이대로 써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아이가 준거로 삼을만한 삶인지에는 물음표가 붙어서다.
부모가 된 우리가 아이에게 좋은 준거가 되려면, 삶에 확고한 지향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도 소위 '성공 방정식'이란 게 바뀌지 않는 걸 보면 회의감이 든다. 특히 우리 사회는 삶에서 물질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기형적이다. 인생에서 의미 있는 가치("What Makes Life Meaningful?")로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를 꼽은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았다. 대다수 다른 나라는 1순위로 가족을 꼽았다. 역사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화려한 외관의 한국이 과잉 경쟁으로 그 속은 썩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삶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도대체 누구고, 이 우주 한 구석에서 뭘 하고 있나란 생각말이다. 매일 육아로 힘들고, 아이를 보며 느끼는 행복이 여유 있는 사색을 허락하지 않지만 자꾸 삶을 돌아보게 된다. 틈만 나면 내가 잘 살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삶의 모든 게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 답이 없는 고민일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면 육아 전선에 선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에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윗세대 어른들이 정답으로 본 또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전형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적어도 과거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수용해선 안 된다. 세상 일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듯 직접 겪고 큰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많아서다. 내가 삶에서 겪은 몇 번의 변곡점 가운데 '출산-육아'는 가장 큰 진폭의 변화다. 그동안 중요하게 여겨온 것들이 아이, 가족이란 이름 앞에선 사소해지기도 했다.
육아는 매 순간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연습도 없고, 매 순간이 실전이고 평생 한 번뿐이어서다. 물론 언제, 어디서건 당장 온 우주가 끝장 날 긴박한 일은 없다. 모든 일이 '세상'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은 하루하루를 비장하게 살아낼 부담감을 덜어준다. 비록 아이를 마주하는 시간이 짧지만, 서로에게 눈빛 말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간이 있어 팍팍한 현실을 견딜 수 있다. 언젠가 이 폭풍우도 멈추겠지만, 그 속에서 얼마나 더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시간을 잘 버텨내다 보면 조금은 더 나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 그칠지 모를 폭풍우를 헤쳐 나가며, 진정한 어른이 되고 있을 모든 부모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