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고 있어요
23년 3월 9일,
우주의 중심인 아이
익숙해서 잘 안다고 생각한 것도 글로 쓰면 딱 몇 문장이다.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기 전까지 일과 관련 없는 주제로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당연했다. 일로는 정해진 주제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글로 정리할 자신이 있다. 읽고,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며 정해진 형식에 맞춰 글을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글이란 게 여러 목적이 있어 일로 쓴 글이 얼마나 널리 읽힐지는 의문이다. 일반 대중을 타깃 독자로 하지만, 어느 독자층이 읽을지 생각하면 소수일 게 분명해서다.
아이를 키우며 그때그때 드는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니 '육아일기', '반성문', '호소문', '체험기' 등이 나왔다. 아이를 키우며 드는 생각이 휘발되지 않도록 쓰기 시작한 글이란 점을 고려하면 나름 큰 진전이다. 또 담담하게 '아이 있는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목표를 넘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다. 하루하루 아이의 시간을 채우는 삶을 어떻게 기록할지 고민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잡아두고 싶지만,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서다.
'아이 있는 삶'에 진입한 우리 부부는 동 시간대, 다른 공간에 있을지 모를 우리의 평행우주가 어떻게 채워지고 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그만큼 부모의 삶은 짧은 기간 주변 모든 게 완전히 바뀌는 극한 체험을 하게 한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건 아이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세상 모든 부모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일 텐데, 부모가 되기 전에는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다. 아니, 별 관심도 없었다. 그때는 부모가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7개월 차 부모가 된 우리는 이제야 엄마, 아빠란 정체성에 조금 익숙해졌다. 부모 입장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면서 우리는 둘의 성장기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만큼 '현재-미래의 우리'뿐 아니라 '과거의 우리'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아이를 만나고,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삶을 살게 된 지금이 더 좋은 건 확실하다. 서로를 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매일, 아이와 함께 서로를 잘 알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
또 아이가 없었다면 남들 사는 방식, 좋은 게 좋은 거란 타협을 수용하고 살았을지 모를 우리는 셋이 함께 추구할 삶의 방식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 겪지 않고 알 수 없는 세계가 있어, 모두에게 맞는 보편적 삶이 없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관성을 깨는 건 어렵다. 관성이 관성인 이유도 분명해서다. 삶이 모두에게 쉽지 않고 지난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살면서 숱하게 듣고, 봤지만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삶의 지난함에는 나이가 들면 익숙해지는 줄 알았다.
아이 있는 삶은 아이를 만나기 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한다. 아내의 휴직이 그랬고, 내 삶을 돌아보고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될지 고심하는 우리 모습도 그렇다. 어른, 아니 부모가 되는 건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아이와 함께 맞이한 올해, 우리 부부는 각자 새해 계획을 세웠다. 언어 공부, 책 읽기, 글쓰기는 흔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찾아온 아이로 인해 우리는 무엇보다 우선순위로 아이를 챙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아이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해서다.
매체를 통해 비친 사회상을 보면 힘들지 않았던 시절이 없었다. 내가 세상사에 눈을 뜨며 이것저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0대 시절부터 경제는 온통 위기 타령이 난무했다. 도대체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이를 고려하면, 표면적으로 '아이 있는 삶'은 비합리적 선택이고 앞으로는 더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겪지 못했을 대전환은 우리를 부모라는 새 차원에 도달하게 했다. 부모로 살아온 기간 중에 마주한 짧은 환희의 순간들은 '아이 있는 삶'을 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오늘도 아이가 우주의 중심인 삶을 살고 있을 세상 모든 부모를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