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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루 Mar 14. 2023

오늘을 사는 아이

아이가 오늘을 살게 하는 방법

23년 3월 14일,

오늘을 사는 아이


'아이 있는 삶'을 지속할수록 아이와 가까워지고 있다. 당연한 말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부모도 부모로, 한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이여서다. 여럿을 키워도 아이 하나하나가 모두 달라 더 그렇다. 지난해 8월 모든 게 서툴렀던 우리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와 함께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지난여름, 아이를 처음 만나고 느꼈던 벅찬 감정은 작은 안정감으로 바뀌고 있다. 작고 작은 아이를 보며 우리가 얻은 게 많아서다.


우리가 은수를 만난 건 참 행운이다. 같은 월령에 비해 평온한 편인 아이는 우리를 보채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제단 하는 건 옳지 않지만, 주변 아이들을 접하며 이는 분명해졌다. 조리원에서부터 지금까지 쉽게 달래 지지 않을 정도로 운 적이 거의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조리원 퇴소 후에 몇 주간 긴 잠에 들지 않아 고생했지만, 이마저도 다른 이들에 비하면 가벼웠다. 생후 50일 전후로는 5~6시간 이상 통잠에 들기 시작하며, 아이는 밤 사이 수유를 기다릴 때도 큰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200일을 넘긴 요즘은 10시간 이상 푹 잔다!


며칠 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할머니를 만났다. 가깝게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오가다 인사를 하고 지낼 정도는 됐다.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아기가 있는지 물으셨다. 얼마 전에 아이를 안고 나가는 모습을 봤다고 하셨다. 7개월 차 아이가 있는 집이니 옆집에 이래저래 민폐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밤이나 새벽시간 아이 울음소리는 큰 소음이 될 법해서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그전에 살던 집의 아이 울음소리는 컸는데, 그렇지 않다고도 하셨다.


다행으로 생각했다. 아이가 순한 편이라 잘 울지 않는다고 답했다. 할머니는 아이 키우기 힘들 텐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이 소리가 나지 않아 아이를 안고 나가는 모습을 본 게 아니면 아이가 있는지 몰랐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가 귀한 세상에 부부 둘이서 끙끙대며 아이를 키우는 건 여간 힘든 일이다. 참견이 아닌 작은 격려는 초보 부모에게 큰 힘이 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분명 고생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는 얻은 게 많다. 먼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절감하게 됐다. 아이가 없었다면 절대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둘째, 부부에서 부모가 된 우리는 가족으로 더 똘똘 뭉치게 됐다. 부부로도 잘 지냈지만 부모가 되고는 아이를 키우는 일을 나눠하며 서로를 더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셋째, 부모가 되고 우리 자신을 꼼꼼히 돌보는 일에 진심으로 임하게 됐다.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면 좋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우리는 각자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도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이가 겪는 보편적 과정은 아니다. 다만, 모든 일의 우선순위가 '아이'로 재편되는 경험은 부모를 더 높은 차원에 닿게 한다. 부모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위해, 과거 중요하게 여겼던 걸 쉽게 포기하는 우리 모습은 우리 자신에게도 생경하다. 그렇다고 부모 역할을 일종의 과업으로 접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랬다간 부모가 금방 지치고, 장기전인 육아를 버텨내지 못할 게 뻔해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모가 되고 있는 우리는 비장한 각오보다 오늘도 무탈히 잘 보냈다는 안도감을 찾으며 살고 있다. 아이를 둘러싼 여러 변수가 아이의 하루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어서다.


아이의 평온함은 부모를 자유롭게 한다! 아이 발달에 일정한 잣대가 있지만 모두 그에 따라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건 아니다. 아이 옆을 지키는 부모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만의 속도에 발맞춰 걷는 것이다. 육아에서 아이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핵심이 아니다. 낳아 놓으면 아이가 알아서 큰다는 흔한 말은 아이가 자신의 속도대로 클 테니 부모가 쩔쩔매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처럼 최면 걸듯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오늘도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로서의 욕심을 투영하고 싶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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