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 Sep 24. 2022

배 타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

소중한 사람을 바다로 보낸 사람들에게

 


   배를 타러 가는 사람한테나 그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배를 타러 간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은 유독 길게 느껴지지만 만날 수 있는 휴가 기간은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한동안 볼 수 없는 바다로 보내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항해사로 일을 하며 나는 항해사 아들이자 항해사 동생이었고 항해사 남자 친구였다. 항해사의 입장에서 배를 타며 소중한 사람에게 바랐던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시간에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잊혀지는 것이다.


만화 원피스 중 유명한 장면 중 하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까 봐 무섭고 두렵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것 같고 소중한 사람을 축하하는 자리 나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 배를 타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되지 못할 때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생긴다. 오랜 기간 배를 타다 보니 평생 가자던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하나 둘 멀어지고 남는 것은 가족과 연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매일 같은 곳에서 생활한다. 매일 똑같은 풍경과 똑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고 일상화된 일을 한다. 너무 지겹지만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힘든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나만 고생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를 타는 사람들은 쉽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끝에는 "괜찮다"는 말로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심시키고 다시 고된 일을 하러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가끔 해기사 남자 친구가 연락이 안돼도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 위의 통신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일의 강도도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때때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연락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때때론 몸이 너무 힘든 나머지 곯아떨어져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하루 종일 당신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돈 벌어서 내 사람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힘든 일을 이겨낸다. 


'내가 배를 타다가 죽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죽기 직전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는데 일반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좋았던 기억들과 추억들이 떠오르겠지만 배를 타다가 죽은 사람은 좋았던 추억이 당신과 함께 보냈던 그 짧디 짧은 휴가 기간밖에 없기 때문에 온통 당신에 대한 기억만 떠오를 것이다. 배를 타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당신밖에 없다. 





배를 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 먹고 싶은 음식이나 영양제 따위가 아니다. 잊히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는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큼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일상이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꼭 좋은 일일 필요는 없다. 가끔은 푸념을 할 수도 있고 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해도 좋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 항상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표현해주는 것이야 말로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네가 그 큰 배를 직접 운전한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