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남정 Oct 05. 2022

[북&무비] - 감독 하정우

《허삼관》 vs  『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는 말 그대로 ‘허삼관’의 ‘피 파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도 헌혈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렵던 5,60년대에 매혈이 있었다. 수요가 있으니 당연히 공급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좀 나아지고 매혈로 인한 부작용도 방치할 수 없게 되자 1990년대 말 ‘혈액관리법’이 개정되어 매혈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195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허삼관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처음으로 매혈을 통해 35원이라는 거금을 쥐게 되고, 그 돈으로 마을에서 가장 예쁜 여자인 허옥란과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세 아들을 낳으며 10여년을 행복하게 살던 허삼관, 그러나 뜻하지 않게 첫 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뻔할 수 있었던 스토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하정우는 《허삼관》의 역을 맡은 배우이면서 감독이고, 각색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 누구보다 이 작품을 열심히 읽었을 하정우는 허삼관의 심리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마을에서 제일 예쁜 아내를 가진 자의 자부심, 그런 아내와 세 아들과의 가난하지만 행복한 아버지의 모습, 십 년을 장남으로 여기며 사랑으로 키워온 아들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크고 작은 변화들까지, 게다가 예쁜 아내의 과거가 만천하에 공개된 후의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증상과 행동들을 구구절절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감독 하정우’는 ‘배우 하정우’에게 빚을 졌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그 바탕에 중국의 시대격변기가 고스란히 깔려있다. 문화대혁명으로 모든 것을 사회주의 문화로 새롭게 건설하려던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앞세워 반혁명인사들의 자아비판을 이끌어 냈고, 모든 낡은 것을 파괴하겠다는 명분 앞에 문화재와 예술품을 파괴했다. 이러한 불똥은 허삼관이 사는 작은 마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아내 허옥란의 도덕적인 문제가 대자보에 붙게 되어 인민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위화의 허삼관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그 곱지 않은 아내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고 남들 몰래 밥밑에 고기까지 깔아다 주는, 뭔가 묵직한 책임감과 사랑을 가진 가장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감독 하정우’는 이러한 ‘뭔가 묵직한 책임감과 사랑’을 ‘배우 하정우’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 ‘배우 하정우’는 묵직한 책임감과 사랑을 충분히 잘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 하정우’는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중국도 한국도 아닌 그 어딘가에 놓고, 시간적 배경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무시간성에 놓아버렸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뒤이은 장편 『형제』 또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중국 대표작가로 그 위상을 높였다. ‘감독 하정우’는 데뷔작인 《허삼관》을 끝으로 감독 일은 접은 듯하다. 하지만 ‘배우 하정우’는 같은 해 《암살》(2015)을 비롯해 《아가씨》(2016), 《터널》(2016), 《신과 함께-죄와 벌》(2017), 《1987》(2017), 《신과 함께-인과 연》(2018) 등에 출현하며 천만 배우의 위용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감독 하정우’의 건투를 빌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북&무비] - 돌보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