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vs <작은 아씨들>
“여자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누가 보겠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이자 ‘여자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인 『작은 아씨들』은 총 4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868년 발표된 1부 「작은 아씨들(Little Women)」과 출판 당시 「좋은 아내들(Good Wives)」로 발표된 2부까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은 아씨들』이다. 그 뒤로 3부 「작은 소년들(Little Men)」(1871), 4부 「조의 아이들(Jo`s Boys)」(1886)이 후속작으로 나와 있지만 번역본은 2부까지가 전부다. 1부와 2부에서는 북부 미국의 시골마을(매사추세츠)에 사는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네 자매의 성장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이 나온 1800년대 미국은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 남성들은 대부분 전쟁터로 나가고 없었고, 여성들은 생계와 육아를 모두 책임져야 했다. 노예제도는 물론 인종차별과 성차별 역시 심했던 시대였다. 그러니 여성이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고모의 표현처럼 여자가 돈을 벌려면 창녀나 배우가 되어야 했고, 에이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자는 어떻게든 부잣집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했다. 능력이 있는 남편이건 아니건 일단 결혼을 한 후에는 당연히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내조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 잘 양육하는 일이 여성이 할 일이었다. 그런 시대적 배경에 조 같은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노예제나 여성 해방을 일깨우게 하려는 작가의 당찬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작가 메이 올컷은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성주의 측면에서 많은 관심과 연구 대상이 되었으며,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수없이 영상화되기도 했었다.
2020년 2월 12일 개봉한 영화 <작은 아씨들>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품이다. <작은 아씨들>은 1917년, 1918년, 1933년, 1949년, 1994년에 이어 2018년에도 개봉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1994년 KBS2에서 <왈가닥 작은 아씨들>이라는 TV만화로 방영되었던 적이 있고, 2022년에는 tvN에서 모티프를 그대로 딴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일곱 번째 영상화된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할 때도 많은 분야에 함께 노미네이터 되었다가 의상상을 수상했다.
시간의 흐름대로 연결되는 도서『작은 아씨들』과는 달리 영화는 1부와 2부를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조가 출판사에 자신이 쓴 작품을 투고하는 첫 장면이, ‘작은 아씨들’이란 작품을 두고 출판업자와 협상을 하는 조의 모습이 그려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되면서, 원작 ‘작은 아씨들’이 책으로 출판되는 과정을 헌정하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감독이 선택한 교차편집은 수없이 영상화되었던 ‘불멸’의 베스트셀러인 원작을 낯설게 하는 데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원작 소설을 다 읽은 독자나 이전에 영상으로 이 작품을 접했던 관객들도 지루하지 않게 스토리 라인을 따라갈 수 있다. 반면 지나치게 잦은 교차로 인해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원작의 깊이를 느끼지 못 할 몇몇 장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원작에 최대한 충실했던 작품이다.
영화와 원작을 비교해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로리가 (조가 아닌) 에이미와 결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원작에서 이 둘의 관계는 몹시 신중하고, 깊고, 아련했다. 조에게 거절당한 로리가 뒤늦게 세련된 성숙미를 보이는 에이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 같은, 혹은 조가 두 사람의 그런 관계를 어쩔 수 없지만 쿨하게 받아넘겨주는 것 같은, 그런 가벼운 관계가 결코 아닌 것이다. 결국 영화가 놓친 것은 더 잘 활용할 수 있었던, 원작에 미치지 못하는 로리의 캐릭터다.
하지만 원작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잘 된 장면도 있다. 바로 로리가 조에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했다가 거절당하는 장면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지내던 로리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백해야겠다고 하는 표정 연기와,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알면서도 거절하는 복잡한 심경의 조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로리(티모시 살라메 분)와 조(시얼샤 로런 분)의 캐릭터 선정도 좋았고, 어느 캐릭터 하나 균형을 잃지도 않았지만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에이미(플로랜스 퓨 분)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앞선 말한 것처럼 일곱 번째 영상화된 <작은 아씨들>은 원작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다. 하지만 영상으로 다 보여주지 못한 ‘작은 아씨들’의 풍성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만끽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작은 아씨들』 원작을 펼쳐볼 것을 추천한다. “여자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누가 보겠어?”라고 했던 말은 잊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