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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정 Jun 16. 2024

[책 한 소절] 고高학력으로 살아남기

『코리안 티처』, 서수진/ 한겨레출판사/ 2020

선이는 고개를 들어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회색 하늘을 바라보고는, 코트를 벗어 팔에 걸칠까 잠시 고민했다.
코트가 눈에 젖을까 봐 걱정되었다.
 전날 어학당 채용 합격 문자를 받고 산 8만 원짜리 카멜색 핸드메이드 코트였다. 강의실 안에서는 코트를 입을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샀다.
지금처럼 캠퍼스를 걸을 때 자신이 학생이 아니라 강사의 신분으로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9쪽)


이 소설은 H명문대 어학당 한국어 강사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비정규직 고학력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시간과 노동, 감정과 에너지를 마지막 한 알까지 쥐어짜내는 무저갱의 세계, 그런 세계조차 누군가에게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가능성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278쪽)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강사 채용에 줄줄이 탈락하면서, 그나마 ‘끄나풀’ 같은 학교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 소설은 마치 나 대신 강사에 채용된 누군가의 일기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가지지 못하고 누군가는 가졌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의 배부른 푸념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한심해지는 그 어떤 것, 그리고 그 ‘배부른 푸념’이 얼마나 초라한 ‘배부름’인지 결국 인지하고야 마는 그런 어떤 것이다.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nesem

    

나는 2019년에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을 땄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 한국어교육은 열풍에 가까웠다. 또한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외국인에게 한국어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수명은 길어지고 생산연령도 높아지면서 40-50대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직종을 찾기 시작했다. 저출산 고령화와 다문화시대에 걸맞게 유망해진 종목은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한국어교원 같은 것이었다. 나름 학력과 전공을 살려 해볼 수 있는 것이 한국어 강사라고 생각했고, 1년 반 동안의 온라인 강의와 시험을 통해 학점을 취득하기에 이르렀다. 마지막 남은 실습수업에서 한국어 교실의 현실을 마주한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나는 집에서 논술교습을 하고 있었는데, 초등학생 논술을 가르쳐 벌 수 있는 수입에 턱도 없이 미치지 못하는 한국어 강사들의 수당과 처우가 정말 놀라웠기 때문이다. 실습수업이 마지막에 있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미리 알았다면 아마 나는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살아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것, 버텨내는 것, 끝내 살아남는 것.
소설을 쓰는 도중에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졌다. 한국어학당의 규모가 크게 줄었고, 수많은 강사가 일자리를 잃었다.
(중략)
이 소설은 살아남았다. 이 소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아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중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나는 이미 나이가 많아졌고, 인정받을 만한 강의 경력은 하나도 없었다. 나이가 많으면 경력이라도 많던가, 경력이 없으면 나이라도 새파랬어야 했다. 뒤늦게 ‘한국어 강사라도?’ 싶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그쪽 자리도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경력’이었는데, 그 경력을 위해 자원봉사 자리부터 알아보아야 했고, 그 때문에 자원봉사 자리조차 경쟁력이 이만저만 아닌 곳이었다. 자원봉사자가 많으니 실제 한국어 강사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소비재처럼 쉽게 교체될 수 있는 ‘파리 목숨’이며, 보수도 적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소설에서도 나타나 있듯, 그런 자리에라도 서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과 버티려는 사람의 치열한 생존 경쟁인데, 그 생존 경쟁은 참으로 우습게도 여성들끼리의, 비정규직 간의, 즉 소수자끼리의 경쟁이라는 데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

 

사람들은 남 얘기를 쉽게 한다. 고학력 비정규직 나이 든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회적 이슈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이슈로 치부한다. 이 개인의 이슈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소수자들의 연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르면서도 비슷한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이 소설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를 묻는 소설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내려앉는다.(281쪽)” 나는 내가 배운 것들이 쓸모없이 잠겨있는 것이 아쉽다. 문학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연구재단에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그마저도 선정되지 못했다. 나는 또 나의 부족함으로 여기고,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고 싶은 그곳에 진입하기 위해 공부를 좀 더 하기로 한다. 나는 더욱 고학력자가 되고, 더욱 나이가 들어갈 것이다.  핸드메이드 코트를 사입고 캠퍼스를 향하는 길이 꿈인 듯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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