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상 4
나는 주식 투자를 한다. 주식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한 10년 전에는 가지고 있는 주식 대부분이 한국 주식이었다. 해외 주식은 전체 주식 투자금의 20% 정도만 할애했다. 그런데 지금은 포트폴리오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은 한국 주식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전부가 다 미국 주식이다. 어느 하루에 한국 주식을 모두 팔고 미국 주식으로 갈아탄건 아니다. 10년간 조금씩 조금씩 한국 주식 비중을 줄여왔다. 한국 주식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1년 전이다.
왜 한국 주식에서 점점 손을 떼게 되었을까. 계속해서 한국 주식에서 실망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실적이 안좋아서? 그렇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미국 회사 중에서 실적이 좋은 기업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한국에도 좋은 실적의 회사는 많이 있다. 10년 이상을 생각하지 않고 몇 년 이내만 볼때는 한국에도 충분히 유망한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주식에서는 점차 손을 떼게 된다. 한국 주식시장은 주식 시장의 아주 기본적인 전제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주식시장, 나아가 투자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기본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투자를 받은 기업이 매출,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거라는 전제이다. 기업이 그 돈으로 놀고 먹으려 한다면 투자자는 절대 돈을 대지 않는다. 경영자가 최선의 노력을 해서 회사를 성장시키려고 믿고서 투자를 한다. 기업이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은 기업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주식시장은 그런 전제로 다른 사람의 돈을 투자금으로 받는다.
둘째, 기업은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이라는 전제이다. 주가가 올라가면 경영자도 좋고 근로자도 좋고 주주도 좋다. 모두가 윈윈한다. 기업은 최대한 주가를 높이려고 하고, 주가가 높아질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한다. 매출, 이익이 증가되면 주가가 올라가고,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져도 주가가 올라간다. 기업 경영자가 주가를 올리려고 노력을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투자자는 주식을 산다.
이 두 전제는 주식시장이 제대로 정립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이 두가지가 기반이 된 이후에 어떤 기업이 성장할지, 어떤 기업의 주가가 올라갈지 예측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기업이 성장할 생각이 아예 없으면, 또 기업이 주가를 올릴 생각이 전혀 없으면 아무리 기업 전망이 좋다고 해도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한국 기업 중에는, 특히 주식투자 대상이 되는 상장 기업 중에는 이 두가지 전제를 충족하지 않는 기업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한국전력을 보자. 한국전력은 현재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런데 적자를 보게된 이유는 경영을 못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 지침을 따르느라 적자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탈 원전 정책을 추구했고, 한국전력은 이 정책에 적극적으로 따랐다. 이익이 감소되고 적자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한국전력은 매출, 이익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정부 지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전라도 지역에 새로 대학도 만들었다. 한국전력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해서 만든 것도 아니다. 정부 지침이었다. 한국전력은 매출 증대, 이익 증대에 관심이 없다. 주가를 높이는 것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정부 지침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전력은 공기업이다. 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주주인 정부의 의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운영하려면 국민들에게 주식을 팔고, 주식시장에 상장해서는 안된다. 국민들에게 비싼 가격에 주식을 팔고 엄청난 돈을 챙겼으면, 일반 국민 주주들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주식을 팔아서 돈을 챙기고, 그리고 주주이익과는 상관없이 정부의 의지대로 기업을 경영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모든 주식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경영하면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 주식은 팔아놓고, 상장기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돈을 다 챙기면서 회사의 이익과 주가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상장회사로서의 기본적인 전제에 맞지 않는다.
강원랜드도 마찬가지이다. 강원랜드도 상장회사이다. 그런데 강원랜드는 정부의 사행산업 매출총량제 규제를 받는다. 매출을 일정 수준 이상 달성해서는 안된다는 규제이다. 정부의 시책과 방침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럴려면 강원랜드 주식을 일반인에게 판매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해서는 안된다. 공식적으로 매출 증가, 이익 증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회사들, 그래서 주가 상승이 제약되어 있는 기업들이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다. 이런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면, 아무리 기업 실적의 전망이 좋아도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없다.
공기업만이 아니다. 일반 사기업 중에서도 매출, 이익 증가를 바라지 않고, 주가 상승을 바라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속을 준비하는 기업들이다. 한국의 상속세는 굉장히 비싸다. 기업 대주주의 경우 50%의 상속세가 기본이고, 경영권이 있으면 65% 상속세를 낸다. 사실 상 기업주가 사망하면 기업을 토해내야 하는 구조이다. 가족들은 그냥 기업을 토해낼 수는 없다. 기업을 계속 보유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주가를 억누르는 것이다. 상장회사 주주 상속세는 주가를 기반으로 상정한다. 10만원짜리 주식 20만주를 가지고 있으면 200억이고, 그러면 100억을 상속세로 낸다. 그런데 주가가 5만원이라면? 5만원 주식 20만주면 100억 자산이고, 그러면 50억을 상속세로 낸다. 주가를 5만원대로 유지하면 상속세 50억을 절약할 수 있다. 주가가 낮으면 낮을수록 상속세 부담이 감소한다. 회사 실적이 좋아지고, 그에따라 주가가 올라가면 안된다. 그러면 상속세 부담이 크게 증가한다. 기업주가 사망할때까지, 그래서 상속세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회사의 실적도 좋아져서는 곤란하고, 특히 주가가 올라가면 안된다. 상장기업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고 주가를 높이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기업, 대주주 측에서 주가를 낮추려고 한다.
한국 상장 기업들이 이상한 행보를 하는 것은 대부분 이 때문이다. 이익이 많이 나는 사업을 그냥 가지고 있어야 회사 이익이 증가하는데 오히려 회사 분할을 해서 내보낸다. 아무리 봐도 사업 연관이 없는 두 회사가 서로 합병을 한다. 이런 것들은 대주주 입장에서는 꼭 필요하다.하지만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분명 손실이다. 일반 주주를 고려하지 않고 대주주만 고려하는 이런 기업들은 사실 상장회사로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한국 상장 회사는 이런 기업들이 굉장히 많다. 한국에서 주식투자를 하려면 산업의 전망, 회사의 실적, 기대치보다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상속 이슈가 없는 기업 중에서도 주주의 이익을 무시하는 기업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상증자이다. 회사가 꼭 필요해서 유상증가를 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회사의 주식이 갑자기 폭등을 하면 많은 경우 유상증자를 발표한다. 미리 계획된 유상증자가 아니라, 주가가 폭등한 기회를 이용해서 한몫 챙기려는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드는 유상증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좋지만, 일반 주주들은 물을 먹는다. 기업, 대주주, 일반주주가 모두 같이 이익을 보는게 아니라, 일반주주를 희생해서 기업, 대주주가 이익을 챙기는 구조이다.
나는 기업의 성장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 또 일반 주주의 이익도 같이 고려하는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 주식시장의 이 당연한 전제가 한국 주식시장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손을 떼고 미국 주식시장에 비중을 두게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