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시각 vs 교수의 시각
의과대학 정원을 1,500명 늘린다. 현재 전국의 의대 정원은 3,058명인데, 여기에서 1,509명을 늘린다고 한다. 원래는 2,000명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좀 줄어서 1,500명이다. 1년 사이에 의대 정원이 50% 증가한다.
의대 정원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견이라는 것은 있다. 의료인, 의료기관 등과 아무 상관없는 나 개인이지만, 어쨌든 의대 정원 증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환자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전직 직장이었던) 교수의 입장이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의사가 늘어나는 게 좋다. 종합병원에 가려할 때, 정말 의사 예약하기가 힘들다. 아파서 예약을 잡는데, 못해도 몇 개월 후에 예약이 된다는 게 말이 되나. 요즘 사회 어떤 부분에서 예약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나. 또 예약일이 되어 병원에 가도, 예약 시간에 맞추어 진료하는 경우는 없다. 예약을 해도 몇 십분, 몇 시간 기다리는 게 일상이다. 이럴려면 예약은 왜 받았나를 따질 정도로 시간관념이 없다. 요즘 이렇게 예약 시간을 어기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경우도 병원 말고는 없다.
응급실도 마찬가지이다. 크게 다쳐서 119 응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왔다. 사이렌을 울리며, 급하게,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응급실에 왔다. 그런데 응급실에 빨리 오면 뭐하나. 응급실에서 의사 진료를 받기 위해 한없이 대기해야 한다. 심장마비 등 정말로 급한 경우에는 빨리 치료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리 부러지거나 그런 정도로는 그냥 대기다. 응급차 사이렌 울리지 않고 그냥 천천히 왔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대기 시간이 길다.
이런 건 모두 의사가 부족해서다. 의료 수요에 비해 의사 공급이 없으니 이렇게 환자가 오래 기다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의사가 늘면 이런 일은 줄어들 것이다. 언제 응급실에 갈지 모르고 대학병원에 가야할지 모르는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늘어나야 한다.
물론 단순히 의사가 늘어난다고 이런 문제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의사가 분명 부족하기는 한 것 같은데, 부족한건 어디까지나 응급실, 종합병원뿐이다. 서울 강남에는 건물 하나마다 병원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치과,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등 각종 병원 간판이 건물마다 있다.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 저 많은 병원들이 다 유지가 되나를 걱정할 만큼 아주 넘쳐난다. 의사가 부족한건 종합병원, 응급실, 그리고 시골뿐인 것 같다. 일반 도시에서는 눈만 돌리면 다 병원이다.
아프리카에 굶주리는 아이가 많은데 선진국에서는 버리는 음식이 넘쳐난다면, 아프리카 아이들의 굶주림은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식량 분배 시스템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주변에 병원들이 무지 많은 것 같은데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의사가 부족하다면, 이건 의사 수의 문제는 아니다. 의료 기관 간 의사 배분의 문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의사가 늘어난다고 해서 종합병원, 응급실 진료가 더 쉬워질지는 모르겠다. 지금 한 건물에 하나의 의원이 있다면, 한 건물에 두 개의 의원이 생기는 식으로 서울 도심 의원만 증가할 가능성도 높다. 종합병원, 응급실에 의사들이 더 배치될 수 있는 시스템 변화가 없다면, 의대 정원 증원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종합병원에 가서 의사 만나기는 너무 어려우니,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 증원을 찬성하게 된다. 의사 수가 많아지면, 종합병원에서 의사 만나기가 더 쉬워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이다. 그럼 나의 다른 쪽 입장,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수 입장에서는 어떨까? 교수 입장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나의 의견은 분명하다. 절대 반대이다. 이런 식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안 된다.
학교, 학과는 학생 수가 몇 명인가가 일종의 권력이다. 학생 수가 많을수록 학교의 위상이 올라가고, 또 학과의 위상도 올라간다. 그러니 학과의 정원이 축소된다 하면 반대하고 정원이 확대된다면 찬성한다. 그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정원 확대를 가장 반겨야할 교수가 정원 증대를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실습실 운영과 관련된 경우이다.
대학 강의에서 정원이 늘면 대부분 별 문제없다. 40명 정원이 60명 정원으로 늘었다 하자. 그러면 40명 들어가는 강의실을 이용하다가 60명 이용하는 강의실로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면 공간을 좁혀서 책상 의자 20개만 더 들여놓으면 된다. 수업 진행에 아무 문제없다.
그런데 실습수업은 다르다. 필자는 경영학과 교수였다. 경영학과에서는 컴퓨터 실습이 필수이다. 오피스 프로그램 활용도 있고, 통계프로그램 수업 등도 있다. ERP 프로그램 수업이 있기도 하다. 여기서 정원이 40명에서 60명으로 증가한다면? 컴퓨터가 몇 십대 더 필요하다. 그리고 프로그램도 몇 십개 더 있어야 한다. 통계프로그램, ERP 프로그램 등 전문 프로그램은 일반 프로그램과 가격대가 다르다. 프로그램 몇 십 개를 새로 추가하기 위해서는 정말 몇 천 만원, 몇 억이 더 들어간다. 실습 컴퓨터 몇 십 대를 추가하는 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더 문제는 공간이다. 컴퓨터를 더 집어넣는 건 책상, 의자를 몇 개 더 집어넣는 것과 다르다. 다른 강의실이 있어야 한다. 강의실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건 가르치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교수가 두 번 강의할 수도 있겠지만, 교수는 한 학기에 가르칠 수 있는 시수라는 게 있어서, 강의가 2배가 되면 교수도 2배가 되어야 한다. 공간과 교수가 2배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야만 기존과 동일한 수준의 실습 교육이 가능하다.
그런 지원이 없이 그냥 학과 정원만 증원된다면? 그러면 방법은 하나다. 기존에 1명의 학생이 컴퓨터 1대를 사용하며 실습했는데, 컴퓨터 1대 당 2명이 같이 앉아서 실습하도록 할 수 밖에 없다. 실습 능력이 반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니, 사실은 반 보다 더 떨어진다. 초보자 두 명이 같이 실습하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실습 시간이 다 지나간다.
강의만 하는 수업은 정원이 증가해도 별 문제 없다. 하지만 실습수업은 정원이 증가하면 엄청난 타격이 있다. 공간, 장비, 교수 등이 모두 두 배로 지원이 되어야 실습이 가능한데, 그런 식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절대 없다. 지원을 한다 하더라도 그냥 인건비 수준의 지원이다. 실습실 장비, 도구를 추가적으로 마련할 정도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학생들의 실습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의대 실습도 마찬가지이다. 강의 수업이야 정원이 50% 증가되어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습은 아니다. 해부학의 경우, 실습 시체도 50% 늘어나야 하고, 공간도 50% 늘어나야 하고, 관련 장비, 도구도 50% 늘어나야 하고, 교수는 2배 늘어나야 한다. 모든 실습과목마다 그렇게 늘어나야 한다. 그렇게 지원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럼 대답은 하나다. 의사들의 실습 경험이 엄청나게 저하된다. 지금 의대 졸업생의 실습 능력보다 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컴퓨터 사용 능력이야 나중에 혼자 실습해도 되고, 회사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다고 사회에 큰 타격은 없다. 하지만 의대 실습은 다르지 않은가. 실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의사들이 대량으로 배출된다.
실습이 중요한 학과는 절대 학생 정원을 쉽게 늘리지 않는다. 엄청난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의대 정원 확대는 그런 지원 없이 그냥 정원만 늘린다. 실습 능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건 실습실 운영 체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런데 정부는 왜 이런 식의 학생정원 증대를 밀어붙였을까?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법대, 경제, 행정, 정치 등 강의 위주의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다. 이런 학과에서 정원 증가는 강의실에 그냥 의자만 더 갖다 놓아도 아무 문제없다. 그러다보니 의대도 그런 식으로 정원 증가해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습 과목은 이런 식의 정원 증가는 치명적이다. 대학의 실습실 운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런 정원 증가가 학생들의 실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알 수 있고, 그러면 당연히 준비 없는 정원 증대에 반대하게 된다.
정원 확대는 결정되었고, 그러면 내년부터 입학한 의사들의 실력은 분명 확 떨어진다. 앞으로는 의사를 선택하는데 그 의사가 언제 대학에 들어 갔나도 고려해야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