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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이사도씨 Mar 30. 2022

진취적인 돌아이 (5)

처음해보는 헤어스타일

항암을 시작하고 엄마는 매일같이 나의 머리카락을 확인한다. 닭집을 하는동안 귀찮아서 미용실을 가지 않았더니, 내 머리는 거의 허리에 가깝게 자라있었다. 근데 그게 보기가 좋았다. 어찌나 윤기가 나고 풍성한지, 스스로도 ‘탐스럽다.’라며 칭찬을 해줄 정도였다. 그런 머리가 제 자리에 잘 붙어있는 걸 보면서 엄마는 매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니는 머리 안빠질라는 모양이다.”

“엄마, 그런 건 없어. 내 머리도 곧 빠질 거야. 헛된 희망은 가지지 말자.”

항암약 중에 빨간색이 있었는데, 100 퍼센트 탈모를 일으킨다는 설명을 미리 들었었다. 혹시나 하고 물었는데, 예외는 없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간이나 머리가 잘 붙어있길래, 과연 어떤 방식으로 빠질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데, 머리카락이 쑤욱 빠져나왔다.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일지는 몰랐다. 수습이 안 될 정도로 머리가 계속 빠져댔다. 남자친구와 약속을 한 터라, 얼른 몸을 닦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머리카락이 끝도 없이 계속 빠져댔다. 순식간에 머리카락의 3분의 1정도가 바닥에 쌓였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그 머리카락을 쳐다봤다.


평소 내가 오래 씻는 편이기는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욕실에서 안 나오자 엄마가 불렀다. 내 머리카락을 보며 안도하던 엄마의 표정이 떠오른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부모님 모르게 수습하고 싶었다. 문 가까이에서 나던 인기척이 사라진 걸 확인한 후, 나는 재빨리 부엌으로 달려갔다. 커다란 비닐 봉지를 챙겨 다시 욕실을 향했다. 나의 행동이 수상쩍다 느꼈는지 엄마 아빠가 내 뒤로 따라붙는다.

“오지마, 오지마!”

그러나 엄마 아빠는 기어이 화장실에 쌓인 내 머리카락을 보고야 말았다.

벌개지는 부모님의 얼굴과 눈시울, 그들은 차마 내 앞에서 울지도 못한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들 대신 내가 운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남자친구가 도착했다. 남자친구도 나의 빠진 머리카락을 본다. 크게 놀란 표정 없이 그저 괜찮다며 나를 안았다. 더 이상 탐스럽지 않은 내 머리를 보고도, 평소 머리숱이 많아 그런가 어색하지 않다며, 아직 충분히 예쁘댄다. 실컷 울어서인지, 남자친구의 위로 덕분인지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나는 가발을 미리 맞춰놓은 하이모에 전화를 걸었다. 탈모가 시작되었으니, 삭발을 하겠다고 했다. 다들 머리가 좀 더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지만, 머리카락이 쑥쑥 빠져나오는 그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집에서였지만, 다음번에는 바깥, 낯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일까봐 공포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아직 많이 남아있을 때, 조금은 자의로 ‘삭발’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언제 또 삭발을 해보겠어? 맨날 단발 아니면 긴머리만 했잖아? 삭발해보는 여자가 세상에 흔해? 오늘, 내가 해본다!”

하이모에서 머리를 삭발하는 내내, 미용사는 조심스러웠다. 또 나를 위로하는 말을 건넸지만, 실은 내 기분은 위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좋았다. 다른 여자들이 별로 해보지 않은 ‘삭발’을 경험하고 있다는 게 너무 멋지게 느껴졌고, 머리가 빠지는 공포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게다가 거울 속에 보이는 민머리가 돼 가는 내 모습은, 나이답지 않게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덜 못생겨서 좋았다.


“오빠! 나 의외로 대머리인 모습, 예쁘지 않아요?”

“정선씨, 앞모습만 보니까 잘 모르죠? 뒷모습 진짜 웃겨요. 정선씨 완전 비대칭이었네.”

“아, 그래요? 어차피 난 뒷모습은 안 보이니까 됐고, 생각보다 맘에 드는데? 나 머리카락 없어도 좀 예쁘네요?”

그는 기가 찬지 대꾸 없이 웃기만 했다. 가족들은 모두 갑작스레 대머리가 된 내가 매우 우울해하며 돌아올 거라 예상했었다. 동생 내외까지 집에 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걱정도 모른 채 굉장히 신이 난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처음에 가족들은 내가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우울하지 않은 척! 그러나 내가 쓰고 있던 임시 가발을 훌쩍 벗어 대머리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 가발을 온가족에게 돌려가며 쓰게하자, 이내 모두가 깔깔대기 시작했다. 나는 가발을 쓴 가족과 남자친구의 어색한 모습이 웃겼고, 그들은 대머리가 된 내가 박수치며 웃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정선씨, 목탁 사다줄까요?”

“왜요?”

“스님처럼 보이게…….”

하필 홈웨어가 회색이라, 대머리에 회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내가 비구니처럼 보였나보다. 남자친구의 실없는 말에 또 웃음이 터졌다.


상황에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와중에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괜찮았다. 사람들이 많이 울적해한다는 항암 부작용 중, ‘탈모’도 내게는 그렇게 나쁘지 않고 어떤 부분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씻을 때마다 나는 매우 감탄했다. 세수를 하면서 동시에 머리까지 한번에 다 해결하는 그 간편함! 또 다 씻고난 다음에 머리를 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상당히 편하고 좋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삭발’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내 머리가……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치 없이 너무 탐스럽다. 또 삭발 스타일은 계절을 너무 탄다. 겨울이면 머리가 너무 시려워서 고통스럽다. 두통이 올 정도로 두피가 시려운 그 느낌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가발망을 뚫고 들어오는 찬 바람에 순간 비명을 질렀을 정도니까……. 여름에는 여름대로 괴로웠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좋은 가발이어도 내 본연의 머리카락을 이길 수가 없었다.


뭣보다 나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다시 삭발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머리카락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한번쯤은 삭발인 채로 살아보는 시간을 권하고 싶다. 정말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덤으로 무의미한 시간에는 자기 두피를 만지며 심신의 안정도 얻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발을 쓰며 다양한 스타일링을 연출해볼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장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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