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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이사도씨 Mar 30. 2022

진취적인 돌아이 (6)

먹방 1

1차 항암이 무난하게 끝난데 반해, 2차 항암부터는 버거운 느낌이 있었다. 뭘 먹으면 계속 체하거나 설사를 했다. 또, 세상 모든 것들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에서는 냄새가 났다. 먹으려고 집어든 음식에서 냄새가 났다. 코를 막기 위해 집어든 화장지에서도 냄새가 났다. 소변을 볼 때면, 소변이 아니라 항암제를 누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진한 항암제 냄새가 올라왔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엄마가 빨아놓은 옷냄새는, 특히 더 역겹게 느껴져서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어떻게든 냄새를 좀 차단해보려고 마스크를 썼다.


환장하겠다. 단 한번도 맡아본 적 없었던, 나의 침냄새가 느껴진다. 나는 점점 죽어가고 있는 느낌인데, 후각만 미친 듯이 살아날뛴다.


당연히 나는 식욕을 점점 잃었다. 먹으면 체하니 먹고싶지가 않았다. 입안에 넣는 순간, 그 냄새들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구토를 하기도 했다.


‘이런 거였군.’드라마나 영화 속 구토 장면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몸소 느끼는 중이었다. 평소 식탐이 상당한 편인데도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몸이 조금 안 좋아 음식을 거부할 때면, “아이고~. 우리 돼지 병났네.”라며 놀리던 엄마였는데, 이번에는 그런 놀림도 없었다. 일주일 가까이, 나는 물 외에 거의 먹어내지 못했다.


먹는 것 외에도 다른 쪽으로의 의욕 역시 전혀 없었다. 어두운 방 안에 그저 우두커니 누워있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내가 그렇게 지내니, 나를 간병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친구도 덩달아 그 좁은 방에 갇혀 같이 굶는다. 내가 힘든 와중에도 그 사람이 안 된 마음이 들고, 뭐라도 먹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도통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기운 없이 잠든 내 옆을 지키다, 다시 자기 집으로 가기를 반복했다. 지치지도 않고 거의 매일 그렇게 했다.  


엄마는 너무 속상해했다. 무얼 만들어서 내 앞에 가져다 놓아도, 코를 싸쥐며 거부하니 어쩔 수 없이 밥상을 그대로 물린다. 기운은 없지만, 걱정하는 마음들은 느껴졌다.

‘먹고 싶은 걸 찾아야 해!’

먹방을 보기 시작한 이유다. 나도 내가 무엇을 먹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따라서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막 먹방 채널을 개설한, ‘입짧은 햇님’은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데다 어딘가 모르게 인상이 푸근해서 마음에 들었다. 술만 마시면 실수를 하고, 다음날 사과하는 모습도 친근해서 좋았다. 그래서 그녀의 먹방을 중심으로, 각종 먹방들을 줄기차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난히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발견하면 굳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

엄마의 표정이 확 펴지는 게 보인다. 배달이 안 되는 옛날통닭이 먹고 싶다고 했던 날은, 기꺼이 나를 위해 밖으로 나가 포장을 해다주었다.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직접 조리해 주고, 안 되는 것은 배달 및 포장을 해준다. 온 집안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아주 상전이 따로 없다. 그래도 그렇게 만들어주고 사다준 보람을 느끼도록, 나는 일부러 더 감탄하며 열심히 먹었다.


돈을 수억 벌어다준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자랑할 말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엄마는 그저 내가 잘 먹기만 해도 대견해 했다. 어둠 속에 내가 가만히 누워있는 동안 얼마나 속을 끓였을지 짐작이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항암을 하는 내내 먹방을 끊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과는 별개로, 항암약은 내 장기를 하나씩 하나씩 망가뜨리는 듯 했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을 사라지게 만들더니, 생리도 뺏어갔다. 갱년기 증상을 37살에 겪었다. 위는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는 듯 딱딱해진 느낌으로 멈춰있었다.  


‘48kg이 얼마 남지 않았군.’

항암을 시작할 때 나의 몸무게는 64kg이었다. 체중 감소가 유일한 낙이 되어줄 거라 생각하며 그 힘든 시간을 버텼다. 물만 먹은지 일주일 후, 그나마 기운을 좀 차리자, 나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체중계에 올라섰다.

‘에게!!’ 2~3킬로그램 정도 빠졌나? 얼굴은 핼쓱해진 것 같은데, 몸무게는 큰 변동이 없었다. 오늘 하루 밥 한 끼 잘 차려 먹으면 금방 올라올 무게였다. 이러다 언제 48kg이 되누??


텄다.

기운 차린 김에 먹방에서 본, 맛나 보이는 메뉴를 먹었더니 몸무게가 다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항암하는 내내 몸무게가 약간 줄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48kg은커녕 앞자리가 바뀌는 정도의 변화도 없었다. 그렇다고 매우 잘 먹은 건 아니다. 항암은 할수록 힘들어서, 처음에는 일주일만 굶던 것이, 점점 더 그 기간이 길어져서 나중에는 이주일을 꼬박 누워 있어야 됐다.


먹방은 내게는,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먹어보려는 작은 노력이었다. 덕분에 나는 기대했던 몸무게로 가지 못했지만, 항암 후에도 굉장히 빠르게 회복되어 종양내과 선생님을 놀라고 기쁘게 했다. 이때 내가 아주 인상 깊게 봤던 암환자의 글귀가 하나 있는데, ‘토하더라도 먹을 것, 그래야 산다!’였다.


먹방도, 그 글귀도, 결국엔 내가 살고싶어했기 때문에 보게된 거라고 생각한다. 항암하는 동안, 나는 마치 삶과 죽음의 딱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순간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힘들지언정 계속 살고싶었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 떠올렸다. 앞으로 해야할 것들도 떠올렸다. 그러니 나는 먹방을 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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