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이사도씨 Mar 30. 2022

진취적인 돌아이 (7)

인간관계

인간관계     


암 선고를 받은 시기가 연말이었다. 수술을 하고, 항암을 받기로 한 시기가 모두 연말이라 약속이 줄줄이 잡혀있었다. 일일이 전화를 돌리거나 카톡을 하며 약속을 취소했다. 당연히 친구들은 이유부터 물었다. 나는 간단한 수술을 받는데, 어쨌거나 약간의 회복 기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며,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보자 했다. 금방 퇴원할 거니 문병은 올 필요 없다고 했다.


친구들에게는 늘 건강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때문에 생각과 감정이 어두운 시간에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무거운 것들을 잘라내고 정리한 후,  다시 밝은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그렇게 에너지가 어느정도 충전돼야 다시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밝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를 자기 삶의 ‘엔돌핀’이라고 말하는 언니도 있었다. 그 말이 참 듣기가 좋았다. 만남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늘 오늘도 내 덕분에 즐거웠다며, 어떤 날은 내가 '인간 비타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칭찬에 몹시 약한지라, 언니한테 더 잘하고 싶었다. 다음번 만남이 정해지면, 재밌는 에피소드를 기억해내기 위해 애썼다.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내 얘기를 들으며 즐거워할 언니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신났다. 때때로 남자친구가 친구 중에 누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도 없이 언니라고 답했다.


언니는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이었다. 늘 자기 생각이나 행동에 확신이 있어 보였다. 경제에 어두운 나랑은 다르게, 어릴 때부터 돈 관리도 똑 부러졌다.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자랑의 대상이기도 했다. 친언니도 아니건만 ‘나 이 언니랑 친하다! 이 언니가 내 친구다!’ 괜히 으쓱했다. 딱히 언니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가 봐도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언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나는 언니를 존중하면서 한편 존경했다. 그래서 뭘 모르거나 소소한 고민이 생기면 언니에게 털어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현명한 답변을 내려줬고, 나는 감탄했다.

“와~!!! 언니, 진짜 똑똑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역시 언니다!!”

하지만 그런 언니에게조차도 내가 암환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수술 후 통증을 느끼며 끙끙대는 모습과 환자복을 입은 모습 모두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다. 친구들 중, 병실을 묻는 이가 있으면, 애써 문병 올 것 없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유독 한 친구가 계속 나의 상황을 물었다. 얼마 전 출산을 한 친구였다. 출산한 아이 말고도 쌍둥이 아들들이 있어서 총 3명의 아이를 케어해야 했다. 때문에 문병을 오기가 제일 힘들 거라 생각했다. 계속 나의 상황을 걱정을 하길래, 흉부외과에서 수술 잘 받았고 지금은 1인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답해주었다. 2인실에 있을 때는 같이 방을 쓰던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는데, 지금은 편안하다 대답했다. 이쯤이면 나에 대한 걱정을 멈췄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린다.

“여기가 맞나?”

아기를 안고 친구가 나타났다. 나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당황했다.

“야! 너 웬일이야? 내가 병실도 안 알려줬는데.”

“어, 그래서 내가 일일이 병실마다 이름 확인하고 다녔다 아이가. 네가 1인 병실이라고만 해서.”

나는 일단 부모님과 남자친구에게 친구를 인사시켰다. 친구는 수줍어하며 인사를 하고, 나를 보더니 안심했다.

“부모님이랑 오빠도 와 계시고, 니도 괜찮아보이고. 다행이다.”

“내 꼬라지가 이래서 일부러 안 불렀구만. 애까지 안고 왔냐. 미안하게.”

사실 가족과 남자친구 외에 누군가 온다는 것이 귀찮았다. 초라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부끄럽고 싫었다. 친구가 오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친구가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상당히 감동했다. 추운 날씨에 굳이 거절하는 나를 위해, 아기까지 안고 찾아온 친구를 그 순간 사랑하게 돼버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 친구와는, 직장에서 만난터라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그 거리를 허물어버렸다. 내가 아프고 힘든 순간에 외면하지 않고 찾아와준 친구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앞으로 이 친구가 내게 아주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에는, 나 역시 이 친구에게 잘하겠다고 결심했다.


항암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힘들었다.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누워있는 시간 역시 길어졌다. 가족과 남자친구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보니 외로움이 조금 밀려왔다. 언니가 그리웠다. 나를 재밌어 해주고 좋아해주던 언니가 보고 싶었다.

“오빠, 언니한테 내가 암환자인 걸 밝혀도 될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걔는 괜찮지 않을까? 많이 힘들면, 만나서 위로도 받고 하세요.”

괜한 가십거리가 될까봐, 혹은 내 자존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암환자인 것을 말하지 않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실은 내가…… 암이야. 요즘 항암하는 중이야.”

“……그래? 그랬어? 몸은 어때? 좀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눈물이 나서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을 이어가자 언니가 먼저 침묵을 깼다.

“곧 만나자. 만나서 얘기하자.”

“그래, 언니.”

“응, 내가 조만간 연락할게.”

그리고 언니는 연락을 주기로 한 때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바쁜가?? 바쁘지 않은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을 다시 잡았다. 구체적인 날짜는 잡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쯤 보기로 했다. 그때쯤 언니가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또 연락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언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거대한 비밀을 털어놓듯 말해서였을까? 내가 암환자임을 커밍아웃함과 동시에, 언니는 내게서 급격하게 멀어져갔다. 내가 밝고 건강할 때는 종종 내게 연락을 해 나의 밝음을 취하던 언니가, 가장 힘든 시기에 멀어졌단 사실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암환자임을 계속 비밀로 하기로 했다. 항암을 받으며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가발을 뒤집어 쓴 채 나가 아무렇지 않은 듯 수다를 떨었다. 친구들이 내게 조금 피곤해보인다 말하면, “그래? 왜 그렇지?” 등의 말을 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다. 더 이상 인간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1년도 더 지나 언니에게서 몹시 바빴었다며 연락이 왔지만, 나는 언니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내 마음 속에 더 이상 그녀가 없었다. 이미 나는 모든 치료를 다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였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같이 힘들어 해주는 건 쉬운 일이고, 친구가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해주는 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그 둘 다를 할 수 있는 사람만 친구로 뒀다 생각해왔다. 나 역시 친구가 즐거운 순간에 쓸데없는 질투와 시기를 하는 대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어려운 시기에는 도움을 주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소 쉽다고 생각했던 ‘힘든 순간에 옆에 있어주기’를 못해서 나를 떠나는 친구가 있다니…….


이 외에도, 말만 번지르르 하던 친구 몇 명을 더 정리했다. 언니를 정리하고 나니,  그런 친구 몇 명을 더 정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몇 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한동안 그 어떤 친구보다 자주 연락하고 만나던 사이였다. 언니 집의 대소사를 다 챙겼다. 그런 사람이 나의 가장 힘든 시기에 왜 나를 버려 두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처음에는 너무 섭섭했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지나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언니와 내 마음이 같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언니에게는 내가, 힘들고 지친 일상생활 중에 자신을 잠시 웃게 해주는 존재에 불과했을 지도 모르겠다. 나마저 자신을 힘들고 지치게 할 것 같으니 잠시 멀어지고 싶었던 건가?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러고보면 인간관계란, 매우 확정적인 것도 아닌데, 그동안의 나는 어떻게든 그 끈을 놓치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가려고 애썼던 것 같다. 굳이 애쓰거나 연연해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인데…….


분명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후로 나는, 인간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잠시 나의 시계를 뒤로 돌려본다. 나의 시계를, 80살 혹은 임종 직전으로 돌려 이 관계를 다시 들여다본다. 그럼 놀랍게도 웬만한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거의 다 해소가 된다.


그때쯤까지도 매우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나를 잠시 힘들게 하는 행동이나 말은, 기꺼이 용서하고 넘겨준다. 그쯤에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내게 하는 언행은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무시한다. 그러니 나는 어느 순간에건 더 이상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으로 지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진취적인 돌아이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