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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Feb 19. 2024

황금별을 찾길 원하면

푸바오의 '판생'을 응원하며

최근 나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에버랜드 판다월드의 '바오패밀리'가 점령했다. 본래 유튜브 채널은 챙겨보지 않았으나, 푸바오와 사육사 '할부지'가 보여주는 종을 넘어선 애정에 빠져버렸다. 푸바오의 중국 반환 시기가 4월 초순으로 확정되며, 판다월드 관람 시간을 5분으로 제한했는데도 300분이 넘는 대기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팬들의 쉬움도 이리 큰데, 푸바오를 뱃속에서부터 돌봐온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의 심경은 어떨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푸바오의 반환 시기가 결정된 이후, 강 사육사가 한밤 중까지 푸바오 곁에 머물며 '속상하다'고 되뇌는 모습, 송 사육사가 발렌타인데이 댓잎 사탕을 주며 '내년'을 기약하는 모습에서는 담담한 말투로도 덮지 못한 이별의 픔이 드러난다.


푸바오가 스타덤에 오르며 판다 '할부지',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 역시 인터뷰와 강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로 37년차 사육사이자 판다월드를 총괄하는 강철원 사육사는 푸바오가 태어난 순간을 사육사 생활 최고의 날로 꼽는다. 강 사육사는 아이바오-러바오 커플이 한국에 온 뒤로 판다 '손주'의 탄생을 사육사 생활의 마지막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푸바오에게도 강 사육사의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는지, 푸바오는 아기 때부터 강 사육사를 찰거머리처럼 붙잡고 따랐다. 바오패밀리의 영상을 보면 판다가 얼마나 똑똑하고 섬세하며 인간과 교감하는 동물인지 놀라게 된다. 지능이 높고 환경 변화에 예민한 판다들에게 타국으로의 이주는 분명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 나고 자란 푸바오가 '할부지들'을 얼마나 의지하는지 아는 팬들은 푸바오의 중국생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게다가 중국의 몇몇 판다 기지들은 동물 학대 논란이 있어, 중국의 푸바오 팬들마저 '한국에서 살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한다.


저는 푸바오의 판생을 위하여 보내야 한다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강철원 사육사, <세상을 바꾸는 시간> 中)


그러나 강철원 사육사는 한결같이 푸바오의 중국행에 대해 '가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말해왔다. 사실 동물원의 존재에 부정적인 내가 동물원의 판다에게 관심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사육사들이 있다. 사육사들이 담아내는 판다들이 그저 귀여운 볼거리에 그쳤다면 바오패밀리의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육사들은 판다의 변화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판다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을 위해 고민한다. 출산 입맛을 잃은 아이바오를 위해 대나무 밭에서 직접 대나무를 골라오고, 안전하고 풍부한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나무와 놀이기구를 여러  손수 바꾼다. 판다들이 제철마다 어떤 대나무를 잘 먹는지, 어떤 나무로 놀이터를 구성해야 좋아하는지, 성장단계에 따라 어떤 활동이 필요한지 꿰는 것은 기본이다. 사육사들이 판다를 대하는 모습에는 다섯 판다를 각자 다른 성격과 능력을 가진 개체로서 존중하는 태도가 깔려있다. 그렇기에 '사랑하기에 보내준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저도 푸바오와 평생 함께 있고 싶어요. 하지만 푸바오에게 도움되는 일은 아닙니다.
(강철원 사육사,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해> 북토크 中)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야 하는 외부적 이유는 중국의 판다 소유권 정책 때문이지만, 푸바오의 '판생'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만 4세 이후 번식이 가능한 성체가 되면 짝을 만나 아이를 낳는 것이 판다의 삶이다. 현재 여건에서 푸바오의 짝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독립적인 영역을 필요로 하는 판다에게 현재 판다월드의 환경이 최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의 판다기지와 서울 근교의 동물원은 판다의 활동 공간과 전문인력 등 그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아무리 한국에서 판다를 극진히 대접한다 해도, 한정된 환경에서 충분한 야생성을 보존해주기란 쉽지 않다. 푸바오의 중국행은 한국과의 이별인 동시에 더 넓은 환경에서 새로운 판다들을 만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도 있는 제2의 시작인 셈이다.

달갑지 않은 참견이 늘어나는 것은 스타의 숙명. 푸바오와 사육사들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슈푸스타'의 인기에 따라 푸바오의 사육을 참견하는 일부 팬이 발생했다. 아직 어린 쌍둥이와 방사장을 교대로 사용하기 위해 놀이기구를 개조하는 일로도 '푸바오를 찬밥 신세로 만든다'며 사육사에게 비난이 이어진 사례도 있다. 하지만 푸바오는 보란 듯이 개조한 놀이터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위의 사례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극성 팬의 문제이지만, 푸바오의 중국 생활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꽤나 크다. 새로운 환경에서 밥을 못 먹지 않을까, 잠은 잘 수 있을까, 새로운 사육사와 잘 지낼 수 있을까, 한국의 '할부지'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황금별을 찾길 원하면 인생은 너에겐 배움터, 그 별을 찾아 떠나야만 해
('황금별' 中)


애정이 있다면 걱정은 따라온다. 사육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환경 변화에 혼란스러운 시기는 피할 수 없고,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바오와 러바오가 그랬듯이 적응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육사들은 '푸바오가 잘 해낼 것을 믿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푸바오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들의 시선일 수도 있다. 언젠가부터 푸바오의 판생을 생각하면 뮤지컬 <모차르트>의 대표 넘버 '황금별'이 떠오르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험한 세상에 모차르트를 내보내지 않으려는 아버지에게,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은 모차르트의 진정한 인생을 위해서 혼자 떠나게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믿고 지켜보는 것은 아픈 일이다. 성장을 기다리는 과정에는 아픔을 견디는 사랑이 필요하다.


환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는 것은 낯설지만 적응하고 배워가야 합니다.
그 과정이 없이는 인생도, 판생도 이루어질 수 없죠.
(강철원 사육사,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해> 북토크 中)


연말 북토크에서의 강 사육사가 남긴 말에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환경과 사람이 바뀌는 것을 기피하고, 인생의 분기점마다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까지가 가장 두려웠다. 하지만 막상 발을 떼면 적응을 도와주는 많은 인연이 있었다. 새로 시작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온다. 놓기 싫었던 인연과 경험에 '지나간'을 붙여 말할 때가. 하지만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그 시간은 지나간 뒤에도 항상 내 안에 남아있다. 푸바오에게도, 몇 년 뒤 한국을 떠날 루이바오와 후이바오에게도, 판생의 분기점마다 새로운 행복이 함께하기를 빌어 본다. 어린 시절의 온기가 그들에게 행복의 이정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널 사랑하기에 지키겠다 하셨네
성벽을 높이고 문도 굳게 닫았네
하지만 뛰는 가슴 멈출 수 없어
왕자는 성벽 너머 세상 꿈꾸었네

사랑이란 구속하지 않는 것
사랑은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때로는 아픔도 감수해야 해
사랑은 눈물 그것이 사랑

황금별이 떨어질 때면
세상을 향해서 여행을 떠나야 해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저 높은 성벽을 넘어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곳으로
저 세상을 향해서 날아봐

뮤지컬 <모차르트>, '황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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