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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Apr 30. 2022

루브르의 원시 미술 전시실에서

 

 이 예술품들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아니 멈추고 이 자리에 있다. 만든 이의 손을 떠나고 가진 자의 손도 떠났다. 더욱이 자신이 만들어진 고향에서 아주 멀리 유배와 있다. 현장감이 없어 본디 풍겼을 매력이 많이 사라지긴 해도 이 물건들은 시간의 자리매김을 벗어나 영겁의 시간을 살고 있다. 작품 제목을 보거나 만든 시기나 만든 지역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하나의 오브제로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에 와닿는 모양새와 꾸밈없는 단순성이 좋다. 한편 이런 단순성은 추상성으로 치닫는다. 이래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양 예술가들은 너나없이 원시 조각품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고갱, 자코메티, 모딜리아니, 피카소... 


 

 예술 행위라고 생각지 않고 정성과 혼을 다해 만든 사물이라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권력자나 부자들의 치장과 과장을 위한 장식품이라고 해야 하나. 서양 문명의 시점에서 보면 분명 미개 사회라고 보았을 이 지역들의 오브제들은 뭔지 모를 주술적인 매력이 풍긴다. 야릇한 흥분기를 불러일으킨다. 감동이라기보다는 분명 감정의 동요가 생긴다. 인간 본성 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정. 이게 원시 미술이 갖는 매력이다. 형태의 단순함, 표현의 솔직함, 본능을 자극하는 소재. 이럴 테면 성적인 본능, 두려움을 자극하는 표정, 모성애, 쾌활함... 

 나무로 만든 게 많다. 마무리도 거칠다. 만든 이의 사인은 아예 없다. 아이를 앉고 젖 주는 엄마, 서로 마주하고 몸을 끌어안은 남녀, 거대한 고추를 곶추 세운 남자,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머리에 도가 머리 깃털을 꽂고 눈을 부라리는 사제... 서 있는 사람, 앉은 사람, 추상화된 몸과 얼굴. 서양의 현대 조각은 이 원시미술에 빚진 바 크다. 조각뿐 아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신기하게도 이런 원시 예술품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매력이 떨어진다. 19세기 이후로 제작된 작품을 보면 바로 느껴진다. 매끄러운 마무리와 세련된 기교가 더해질수록 본래의 원시적 건강성이 사라지고 문명의 때를 타기 시작한다. 서양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일까. 상업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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