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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Apr 26. 2022

의사의 별명은?

    칼란드리노 이야기


 [데카메론]에도 사기꾼 의사 이야기가 나온다. 아흐레째 세 번째 이야기는 동료 셋과 의사가 공모하여 칼란드리노를 속여 수탉 여섯 마리를 포식하는 이야기이다. 고모로부터 200리라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칼란드리노는 그 보잘것없는 돈(플로린 금화가 아니다!)으로 영지를 살 헛된 꿈을 꾼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부르노와 부팔마코는 땅을 살 게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그 돈을 쓰자며 제안한다. 그렇지만 짠돌이 칼란드리노는 동료들한테 저녁 한 끼 베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넬로(칼란드리노 부인과 친척간이다.)라는 동료까지 가세하여 칼란드리노를 우려먹을 묘수를 짜낸다. 그다음 날 세 사람은 칼란드리노가 집을 나서자마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접근하여 인사를 나누고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얼굴색이 달라졌다, 반 죽은 사람 안색인데 꼭 죽은 사람 몰골인데 하면서 이상이 없느냐고 묻는다. 멀쩡하던 칼란드리노는 이런 말을 듣고 진짜 아프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동료 셋은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워 몸을 덮히고 시모네 의사한테 소변 검사를 맡기자고 답한다. 칼란드리노는 동료들이 시키는 대로 한다.

 

 세 사람과 공모한 의사는 소변 검사를 엉터리로 한 다음 왕진하여 맥을 짚은 뒤 뜸을 들이고는 임신했다는 진단을 내린다. 이에 칼란드리노는 자신의 아내가 상위 체위를 즐겨하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아내 탓으로 돌린다. 칼란드리노의 아내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구면서 자리를 뜬다. 동료 셋은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의사는 입이 찢어져라 폭소를 터뜨린다. 의사는 돈이 제법 필요한 처방이라고 말한다. 산통이 두려워 지레 겁에 질린 칼란드리노는 200리라를 다 써도 좋다고 흔쾌히 수락한다.

 

 시모네 의사는 토실한 수탉 여섯 마리와 필요한 몇 가지를 섞어 증류한 물약을 사흘 먹으면 낫는다고 약재 준비를 시킨다. 의사는 칼란드리노한테 리쾨르 술을 조제하여 주고 수탉 여섯 마리는 넷이서 실컷 나눠 먹는다.

 

 사흘 뒤 동료 셋과 함께 칼란드리노를 다시 보러 온 의사는 맥을 짚고는 다 나았으니 일하러 가도 좋다고 말한다. 기분이 좋아져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일하러 간 칼란드리노는 시모네 의사의 묘약으로 임신에서 벗어났다고 자랑하고 동료 셋은 구두쇠를 놀려먹은데 만족해하며 칼란드리노 부인은 남편한테 투덜거린다.

 


    돌을 깨는 외과 의사


 서양 회화사에서 가장 신비롭고 기이한 그림을 여럿 남긴 히에로니무스 보쉬(1450년께-1516)가 그린 [광기의 치료 또는 광기의 돌의 절제](1494년 이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라는 작품을 보자. 2010년 보쉬 전문가들로 결성된 ‘보쉬 연구와 보존 사업’(Bosch Research and Conservation Project : BRCP)에서 이 작품은 보쉬의 작품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리면서 보쉬 아틀리에의 복제화라고 여긴다.


보쉬, [광기의 돌의 절제], 1494-1516,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여름 철 식물들이 무성한 풍경을 배경으로 야외에서 시술을 한다. 저 멀리 성당과 인가들이 보인다.

 깔때기(지식 아니면 협잡의 상징?)를 거꾸로 쓴 외과의사가 허리춤에 뚜껑 열린 항아리(지갑?)를 매달고 오른 어깨 쪽에 금화가 달린 두건을 두른 채 세모날로 의자에 묶인 환자의 정수리를 절개한 상태다.

 겉옷과 신발을 벗은 환자는 의자 옆에 단도가 꽂힌 돈주머니(부의 상징)를 매달아 두고 있다.

 그 옆에 참관인 아니면 공모인으로 수도사와 수녀가 수술 장면을 자못 심각하게 바라본다. 검은 옷에 초록 망토를 걸친 수도사는 왼손에 술병(주정뱅이의 상징?)을 쥐고 있다. 회색 옷에 흰 면사포를 두른 수녀는 돈지갑을 늘어뜨린 채 머리 위에 책(의학서?)을 이고 있다. 수도사는 환자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속여 넘기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일까? 읽는 게 아니라 책(믿음, 의학, 지식의 상징)을 인 무식한 수녀는 환자한테 수술을 부추긴 사람일까?

 

 거울을 연상케 하는 원형의 그림을 둘러싸는 멋진 고딕체의 경구는 이렇다. "선생님, 돌을 빼내 주십시오. 제 이름은 루버터 다스입니다. 네덜란드에서 루버터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자크, 이탈리아의 칼란드리노처럼 아주 단순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킨다. 

 

 결국 돌 자르는 외과의사가 환자의 머리에서 꺼낸 것은 돌이 아니라 한 송이 꽃이다. 수녀와 수도사가 팔꿈치를 기댄 탁자 위에 그전에 추출한 듯한 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다. 보쉬 시절 광기의 돌 제거는 사기꾼 의사의 치료법이었다. 15-17세기 미신적인 민간요법으로 두개골의 절제를 통해 광기의 돌을 빼내면 광기를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발사 외과의사의 시술은 정신병을 치료하는 시늉으로 하나의 알레고리나 패러디로 보아야 한다. 실제 머리뼈를 절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마나 두피를 일부 절개하고 수술이 잘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미리 준비해 둔 돌을 보여주는 속임수를 쓴다. «광기의 돌의 절제»는 시장터나 민속 축제장에서 익살극 형태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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