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 온반 >에 대하여.
기억 속에 잊혔던 이 음식을 떠올린 것은, 어느 날 저녁, 닭 육수를 끓이게 되면서이다.
최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재료를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은 유학생의 삶의 미덕일 것이다. 맛있는 한 끼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고 말이다.
흔치 않게 닭 한 마리를 통으로 요리하게 되고 난 다음 날, 구석구석 살이 붙어있는 뼈를 버리는 것이 아까웠던 나는, 작은 자취방 냉장고에서 닭이 변질되기 전에 일단 육수를 끓여버리기로 했다. 부엌에서 가장 큰 냄비를 골라 파, 양파, 마늘과 닭 뼈를 몽땅 넣고 삶기 시작했다.
이 국물을 활용하여 무엇을 만들지의 고민은 그 나중의 일이었다. 숙제를 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는 동안 푹푹 고아져 깊고 담백하게 완성된 닭 육수는 그렇게 전날 먹은 닭구이보다도 소중한 재료로 거듭났다.
훌륭한 베이스가 생겼으니, 이제 그에 걸맞은 메뉴 선정이 필요했다. 바삭한 바게트랑 눅진한 치즈가 올라간 양파 수프를 만들어 먹을까? 생각하기도 잠시, 살짝 맛 본 육수가 그 자체로 너무 풍부한 맛이 났던 터라 그 순수한 본연의 맛을 잃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잠시, 그때 떠오른 음식이 바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온반’이다.
잊힌 시간이 무색하게, 맛에 대한 기억만큼은 어찌나 선명한지, ‘온반’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에 미각과 혀의 감촉이 생생히 살아났다. 잘 우러난 뽀얀 닭국물에 결대로 찢어 매콤하게 무쳐낸 살코기, 적당히 기름지고 바삭하게 튀겨진 두부와 계란 지단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소박하고 정직하지만 다채로운 맛. 4년 차의 유학생활에 아무리 자주 한식을 먹어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향수병이 왠지 그 한 그릇이라면 달래질 것만 같은 완벽한 메뉴였다.
이북식 국밥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온반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그러고 보면 진정 특색 있는 우리 집 만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었다. 우연히 닭 육수로 떠올린 음식, 온반은 타지에 사는 이방인의 그리움을 더욱 증폭시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6.25 때 북한에서 건너오신 피란민이셨다. 미식가인 할아버지와 요리 솜씨가 좋으신 할머니 덕에 나는 꽤나 북한 음식을 많이, 그리고 특별한 줄 모르고 접하며 자라왔다. 할아버지의 친구분이 운영하시던 평양냉면 식당은, 평양냉면이 지금처럼 유행하기 전인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의 단골 식당이었고, 특별한 날이면 언니와 나, 엄마, 외할머니 3대가 함께 모여 이북식 만두를 빚었다. 검지 손가락에 묵주 반지가 파묻힌 할머니의 뭉뚝하고 짤막한 손가락에 하얀 밀가루가 뽀얗게 쌓여가며 춤추듯 만들어지던 만두피는 봐도 봐도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의 엄마 또한, 할머니 스타일의 이북식 가정식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특히 온반은 우리 집에 손님들이 오면 종종 대접하는 음식이었다. 몇 가지의 고명들만 준비해두면, 육수를 넉넉하게 만들어 한 그릇씩 퍼주기만 하면 되니 잔치음식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더군다나 손님들은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라며 생경해하고 신기해하니 재미와 새로움까지 더해지는 우리 집만의 이색적인 손님상 메뉴인 셈이었다. 그 때면 나는 엄마를 거들겠다는 명목으로 부엌 테이블에 딱 붙어, 한 그릇씩 소복이 쌓여있던 고명을 슬쩍슬쩍 집어먹었다.
그렇게 우리 엄마를 거쳐 나에게까지 전달된 조부모님의 식문화의 영향과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은 파리에서의 첫 온반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혀에 남아있는 맛의 기억과 엄마의 어깨를 넘어 보았던 느낌으로 대강의 재료와 레시피는 감이 잡혔지만, 버릇처럼 확인차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예상대로 검색 결과가 많이 없었고, 그마저도 보이는 레시피들은 지나치게 많은 재료가 들어가 내가 맛보았던 외할머니 방식의 온반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건 제대로된게 아니다 싶어 검색을 멈추고 엄마에게 연락을해 고명을 확인하고 닭고기 무침 양념의 팁을 받았다.
맛의 절정은 화려한 재료보다도 레시피의 사소한 포인트가 제대로 실현됐을 때에 발휘된다는 신념을 가진 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들을 살려 고명을 준비했다. 부드럽고 포실포실한 계란지단과 뼈에 붙은 살을 발라내 발갛게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을 넣고 무쳐낸 닭고기, 튀기듯 볶아낸 참기름 향이 솔솔 나는 황금빛의 으깬 두부. 맛보다 진한 추억들이 더해져 마침내 완성해 낸 온반 한 그릇을 앞에 두고, 한 숟가락을 입에 밀어 넣자 복합적인 생각들이 지나갔다. 처음 만들어본 온반에서 엄마와 할머니의 손 맛이 제대로 나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이 음식을 잊고 지낸 시간만큼 오래된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아련해지기도 했다. 손님 상에 내기 위해 국그릇에 국물을 퍼담던 앞치마 맨 엄마의 뒷모습과 엄마를 도와 부엌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그릇을 날랐던 어린 언니와 나.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들.
새삼 프랑스에 와서 미술 공부를 하기 전 내가 한국에서 요리를 전공했고, 그래서 여전히 음식을 만드는 것을 즐기며, 이에 진심으로 감동한다는 사실이 감사해졌다. 그 배움과 열정이 이제는 가족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어루만져 주는 귀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온반은 그동안 떡볶이나 순두부찌개를 먹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소울푸드의 맛이었다. 이틀 저녁에 걸쳐 완성한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워냈지만, 요리를 하고, 먹는 동안 의도치 않게 펼쳐진 추억 여행이 너무 값지고 소중해 하나도 고생이 아깝지 않았다. 혼자 먹는 것이 아쉬워 그저, 나의 할머니와 우리 엄마가 그랬듯 여러 친구들을 초대해 저마다의 향수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3대를 거쳐 타국의 자취방에서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따스한 국물은 이제 내게 그리움을 꺼내볼 수 있고, 그 추억 속을 기분 좋게 여행할 수 있는 맛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