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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mentine Feb 02. 2024

Food 3. 리옹 눈물 식당의 탄생


2017년도 리옹에서 생에 첫 독립을 했다. 이십대 중반을 넘어선 스물 여섯 살이었다.

물론 그 전까지 독립을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요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나만의 주방'을 갖는 것이 그 누구보다 간절했다.


소위말해 '엄마의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엄마와 내가 사용하는 소스, 재료들끼리의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요리 후 정리를 화두로 한 충돌이 뒤따를 때면, 원하는 재료로 채운 냉장고와 내 취향의 식기들을 모으는 욕망과 함께 독립에 대한 꿈은 방울방울 피어났다.


그러나 혼자 살이란 내 팔자에는 죽어도 없는 것처럼, 나는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도 본가에서 걸어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사실, 바퀴 벌레와 도둑을 포함해 세상에 무서운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감히 혼자사는 건 엄두를 낼 수도 없었기도 하다. 그렇게 늘 집안의 겁쟁이 막내였던 내가 유학 준비를 시작했을 때, 나를 설레게 한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나만의 냉장고와 부엌이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살게되었던 리옹의 기숙사에는 현관문을 통해 원룸에 들어오면 침대와 책상이 있는 본격적인 생활 공간이 나오기 전 아주 짧은 복도의 왼쪽에 작은 주방이 위치해있었다. 부엌에는 가스렌지 밑에 들어가는 허리가 조금 안되는 높이의 빌트인 냉장고와 양 손을 뻗으면 한 품에 들어오고도 남을 공간에 인덕션 2구, 조금 큰 후라이팬은 들어가지도 않을 크기의 개수대가 있었다.




프랑스 살이를 처음 시작하던 그 때에는, 한인마트에 가는 것이 왠지 사치를 부리는 것 같아 한국에서 두겹, 세겹의 뽁뽁이로 싸서 고이 가져온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와 같은 기본 양념 외에 최대한을 현지 마트에서 충족하며 지냈다. 부엌을 하나씩 꾸미겠단 일념하에 만일을 대비해 사온 캠핑용 코펠 세트와 도착한 당일 까르푸에서 급하게 마련한 몇 개의 식기도구가 전부였다. 리옹에 짐을 풀고, 몇 일이 지나지않아 떡볶이가 너무 먹고싶어진 어느 날에는 편도 40분이 걸려 한인 마트까지 걸어가 딱 떡볶이 떡을 하나만 사온적도 있었다. 한 번 가면 모든 걸 몰아사려는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뎅은 양이 너무 많고 비싸서 떡만 넣고, 만두 대신 프랑스 마트에서 구하기 쉬운 넴 (스프링롤)을 사다가 소스에 찍어먹었다. 그래도 온 몸이 녹아내리는 맛이었다. 누가 보면 1년은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먹고나니 국물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버렸을 소스가 너무 아까워 남겨두었다가 다음 날에는 마트에서 구해온 외국 라면 면을 넣고 라볶이를 해먹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자취 요리 스타트를 끊어준 '리옹, 눈물식당' 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고향 음식 사랑이 눈물겹기도하고, 눈물나게 맛있기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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