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3학년, 수강 신청.
이 제목을 본 순간 등록을 망설일 수 없었다.
예술 대학이다 보니 종종 특이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많이 만나는데 '카메라 없는 사진'은 그중에서도 강렬했다.
브런치에 사진과 관련된 글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 내가 다루고 싶은 ‘사진'에 대한 광범위한 관념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 여러 번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전달할만한 첫 번째 글로 이 수업에 대해 쓰는 것이 딱이라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는 분명 사진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기본 아이템인데, 카메라가 없다니! '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시작한 수업에서 교수님은, 우리에게 학기말의 평과 과제가 '일반적인 카메라의 사용 없이 창작한 작업물 제출'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후 매 수업마다 교수님은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조금씩 각자 무엇으로 어떻게, 어떤 작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기 시작했다. cctv를 캡처하여 작업하는 작가를 보고 블랙박스를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동기도 있었고, 엑스레이로 쓰레기를 찍고 싶다며, 병원에 전화를 걸어보았다가 실패했다는 무용담을 푸는 친구도 있었다.
사진에 대해 공부할 시간을 갖고 이 글을 쓰는 순간, 그럼에도 ‘사진’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까 막상 쓸려니 깔끔이 정리되지 않았다. 문득 보편적인 의미가 궁금해져 네이버에 검색을 했다. 2024년 2월 네이버가 준 ‘사진'의 정의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카메라를 사용해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표현해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론 사진술이 처음 발명되던 때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핸드폰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되는 수많은 이미지 또한 ‘사진’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카메라 없는 사진은 굉장히 획기적인 현대적 개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20세기 초에도 존재했다. 유명한 사진작가 만레이와 나즐로 모홀리 나기는 ‘포토그램’이라는 기법으로 사진기를 사용하지 않고, 감광지에 오브제를 올려서 화학 용액과 빛만을 사용해서 그 형태를 얻어낸 실험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자외선과 빛으로 '포토그램'보다도 쉽게 이미지를 얻어낼 수 있는 ‘시아노타입’의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도 알려진 식물학자 애너 앳킨스 (Anna Atkins)는 1854년 시아노타입을 사용하여 아래와 같은 식물 표본을 이미지로 남겼다.
화학적 반응으로 파란색이 만들어져 ‘청사진법’으로도 불리는 이 기법은, '포토그램'과 같이 오브제를 직접 접촉시켜 이미지를 얻어낸다. 애너 앳킨스의 사진은 볼륨 없는 화석을 보는 것처럼 신비하고 아름답다.
조금 더 현대로 넘어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 없는 사진'작가는 바로 제니 오델(Jenny Odell)이다.
그녀가 활용하는 매체는 다름 아닌 '구글 어스'이다. 그녀는 구글 맵을 떠돌며 지형물들을 캡처해서 콜라주를 통해 하나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낸다. 수영장 외에도, 비행기, 핵 냉각 타워 등 그녀의 수집은 다양하다.
카메라 없는 사진의 이야기는 현대에 있어 더욱 뜨거운 소재가 된다. 바로 AI가 일상과 예술 실천에 다양한 개입을 하면서부터이다. 2023년 유명한 사진 대회인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는 AI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위의 네이버의 사전이 준 정의에서 볼 때에,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그 경계를 한참 지난다. 다양한 분야가 그러하겠지만, 기계와 과학의 분야로 출발하여 예술로 인정되기까지 얼마되지않은 역사를 지나는 '사진'은 특히나 세상의 발전 속에 다이내믹한 진화를 함께한다. 사진 매체의 새로운 국면은 '사진 너머의 시대' 또는 '포스트 포토그래피 (Post photography)'라고 불리며 시대에 발맞추어 또 다른 담론들을 탄생시킨다. 이 끝없는 물음표야 말로 바로 내가 사진 공부를 하며 느끼는 매력이자 또 이 브런치를 통해서 찾아가고, 공부하고 싶은 해답인 것 같다.
'카메라 없는 사진' 수업의 끝에 내가 제출한 작업물의 일부를 공유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구글 어스와 영상 통화 스크린 숏, 스캐너를 통해 얻은 이미지로
한국-프랑스에서의 이야기를 하나의 출판물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