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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다강 May 31. 2022

가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21 〈젖꼭지 3차 대전〉  백시원 감독 인터뷰


*제목은 혜민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 2012)에서 인용

*2021년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젖꼭지 3차 대전>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은 가벼운 24분

방송국 피디인 용은 노브라 연예인의 젖꼭지가 나온 방송 화면에 모자이크를 하라는 부장의 명령을 받는다.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9년 전, 고양이를 키우게 되어 병원에 데려갔다. 암컷이라고 확신했는데, 수의사 선생님은 수컷이라고 했다. “수컷인데 젖꼭지가 왜 있어요?” 내 질문에 선생님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남자들도 젖꼭지는 있잖아요.”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던 그날,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수컷 고양이의 젖꼭지 6개를 보는 기분은 참 묘했다. 〈젖꼭지 3차 대전〉은 빵빵 터지는 웃음 속에서 그때의 이상한 기분을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된 걸까, 궁금함을 가득 안고 백시원 감독을 만났다.




‘탈브라’ 이야기를 넘어서 ‘젖꼭지’를 말하는 영화를 만나게 되어 관객이자 한 명의 여성으로서 굉장히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영화만큼이나 감독님도 유쾌한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영화 〈젖꼭지 3차 대전〉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용피디'가 책임 프로듀서인 '마부장'에게 노브라 연예인의 젖꼭지에 모자이크를 치라는 호출을 받고 벌어지는 우당탕탕 소동기입니다.




이제 막 GV를 마치셨는데, 관객들을 직접 만난 소감이 어떠신지요.


오늘 GV 현장이 정말 좋았어요. 물론 매 상영마다 모두 분위기가 다르고 각각 좋은 말씀들을 해주시지만 종종 관객분들이 경직된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객석 반응이 유쾌해서 기뻤습니다. 또, 인디스페이스가 음향 같은 상영 컨디션이 좋아서 더 좋았어요.



〈젖꼭지 3차 대전〉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성인 인증을 해야만 모든 결과를 볼 수 있다고 나오는데, 혹시 제목을 지을 때 젖꼭지라는 단어를 그대로 살리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는지요.


검색할 때 성인 인증이 필요할 줄 몰랐어요.(웃음) 다들 제목을 좋아해 주시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제가 술자리에서 회사에서 겪었던 젖꼭지 모자이크 일을 얘기할 때 “첫 번째는 이랬어, 근데 2차전은 뭔지 알아?”하면서 순차적으로 설명했거든요. 그때 술자리에 있던 분이 “완전 젖꼭지 3차 대전이네”라고 해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빵 터진 거예요. 그걸 그대로 갖다 썼죠. 원래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3분 정도 분량의 한 장 짜리 콩트를 과제로 내야 해서 이 이야기를 쓴 거죠. 그걸 본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해주고, 또 제작 지원 사업에 공모해야 하는데 제출할 게 없어서 냈는데 운이 좋게 제작 지원을 받게 됐어요. 그래서 전혀 예상치 못하게 제작을 하게 된 거예요.(웃음)




<젖꼭지 3차 대전> 스틸컷




실제로 PD로 일하고 계신 감독님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소재나 캐릭터 구상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내용이 전부 실화인가요?


젖꼭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실화를 기반으로 해도 상황이나 대사가 많이 각색됐어요. 2019년쯤 여자 연예인들 ‘노브라’가 이슈였잖아요. 당시 방송에서 그걸 다루는 방식을 가지고 상사분과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상사님은 모자이크를 치라고 했고 저는 그게 취지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어요. 영화 속 용피디처럼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혼자  불편한 거예요. 이슈에 대해 설명을 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료를 많이 찾아봤죠. 노브라가 정말 방송에 나가면 안 되는지 방송법도 찾아보고요. 그래서 중심 사건은 실화라고 할 순 있지만 그 외엔 픽션이에요. 방송국에서는 보수적으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의여서 큰 명분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이슈를 가지고 의견을 밀어붙이기가 사실 힘들거든요.




용피디가 가려야 하는 젖꼭지가 모두 여성의 것이라는 점에서 자연히 성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성차별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다루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젖꼭지라는 키워드로 코미디 장르 안에서 풀어낸 이유가 있으실까요?


원래 코미디로 풀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면 다들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저에게는 너무나 속상한 일인데.(웃음) 이게 상식이 부딪히는 일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 문제를 가지고 방송국에서 일하는 성인들이 미친 듯이 싸웠다니까 너무 웃겼나 봐요. 처음에는 되게 리얼한 얘기를 쓰다가 '나에겐 심각한 문제이지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되게 웃긴 상황일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때부터는 신나게 썼어요. 술 먹고 글 쓰면 이상한 생각 많이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막 썼어요.(웃음)






용피디는 마부장과 세 번의 결투에서 총 세 개의 젖꼭지를 가려야 했습니다. 옷을 입었지만 티가 나는 노브라 젖꼭지와 SNS 캡처 화면에 들어있는 젖꼭지라는 글자 자체, 마지막은 쌍둥이 남매 중 여자 아이의 젖꼭지였는데요. 사례가 풍부해서 오히려 세 개만 선택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혹시 선정 이유가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배치 순서를 고려하면서 첫 번째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건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브라는 직접적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시각적인 부분에서 처음으로 선정했어요. 그다음에는 이것보다 더 심한 경우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글자 모자이크를 택했어요. 그리고 세 번째는 고민을 많이 했죠. 테니스 선수 ‘샤라포바’ 이야기를 해볼까도 했는데, 갑자기 외국인이 나오는 것도 어색하더라고요. 그러다 찾게 된 것 중에 아기 사진이 있었어요. 여아와 남아가 각각 나온 어린이 육아 예능 캡처 사진이었는데, 여아 젖꼭지만 모자이크가 되어있었어요. 충격이기도 했고 어린아이에게 성적인 잣대를 갖다 대는 게 불쾌하더라고요. 앞의 사례와는 조금 다른 결이지만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있을 법한 얘기고, 미래 세대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자 아이의 젖꼭지를 가린 장면에 이어 비, 싸이, 박진영 등 상의를 탈의한 남성 연예인의 젖꼭지를 모자이크 한 장면에서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심지어 펭수까지 모자이크를 피하지 못했는데요, 묘하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장면인지 궁금합니다.


결말을 어떻게 가져갈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용피디가 노브라로 방송국에 들어오는 걸 상상했어요. 그런데 이 결말이 조금 애매한 거예요. 이 영화를 보고 관객이 무얼 느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보니까 결국 여자든 남자든 같은 젖꼭지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한쪽이 가린다고 다른 한쪽이 가릴 게 아니라 이쪽이 벗을 이유가 있다면 다른 쪽도 벗는 게 좋잖아요. 근데 그걸 영화로 보여주긴 쉽지 않으니까 양쪽을 다 가려보기로 한 거죠. 다른 한쪽을 가려서 오는 낯섦을 느끼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걸 무엇으로 보여줄까 생각하다가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니까 대표적인 상의 탈의 연예인들을 떠올렸어요. 처음에는 붙는 티를 입은 남성 연예인들의 젖꼭지가 티가 나는 부분에 모자이크를 할까 했는데 그 자료가 생각보다 없더라고요. 


영화를 만들고 시사를 하면서 〈우리집〉 감독이신 윤가은 선생님이랑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까 얘기를 나눴는데, 선생님이 많은 사례를 다 갖다 붙여보자고 하셨어요. 스머프는 선생님 아이디어였고 펭수는 제 아이디어였어요. 남자 캐릭터들은 젖꼭지가 보이진 않지만 다 벗고 있잖아요. 붙이고 싶은 캐릭터만 30개는 됐는데 저작권 때문에 다 쓰진 못했죠.




마부장의 젖꼭지가 내레이터인 게 밝혀지는 장면이 굉장히 독특했는데요, 어떻게 나오게 된 연출인가요?


내레이션은 처음부터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이 영화가 계속 설명적이니까 중간에 좀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다큐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까 중간중간 연결해주는 역할로 내레이션을 쓰는 게 익숙한 것 같아요. 우선 내레이션 버전은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하나는 제3의 인물로 동물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느낌을 내 줄 성우, 다른 하나는 영화 속 인물이었어요. 마지막에 내레이션을 써보는데 '내레이터가 젖꼭지라면 되게 웃기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조연출 호진이가 이 상황을 중계하는 거죠. 그때는 논리적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그냥 재밌겠다고 생각하고 썼어요. 그런데 비슷한 질문을 몇 번 들었어요. 왜 갑자기 젖꼭지가 되는 거냐고. 그냥 웃기지 않냐고 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 생각한 게 젖꼭지가 인간으로 분한 게 호진이다.(웃음)


(젖꼭지의 요정인가요?) 네, 요정. 부장님의 젖꼭지가 사람이 된다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을까? 어떤 관객 분은 호진이가 1차전에서 “드디어 이거(젖꼭지) 나와요?”라고 묻는 게 드디어 자신이 방송에 출연해서 그런 거냐고 물어보시기도 했어요.(웃음) 의도는 아니지만 무의식 중에 들어간 게 아닐까요.




<젖꼭지 3차 대전> 스틸컷



시사교양 PD 일을 하면서 동시에 영화를 제작하신 건가요?


일을 쉬는 기간에 영화를 만들어보게 됐어요. 제가 방송일을 할 때엔 픽션이 아니라 시사교양을 했으니까 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 대학원에 왔거든요. 사실 예전에 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연극영화과에 붙었는데, 가진 않았어요.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모두 영화 동아리를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학 동아리는 영화를 완성할 생각을 안 해요.(웃음) 그때 되게 실망해서 한동안 영화와 멀어졌어요. 그 후 회사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몸이 좋지 않았을 때 버킷리스트처럼 영화가 생각났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면 해볼까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갔죠. 그래서인지 영화판에서 성공하는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무조건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도 만들었어요.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큰 영화입니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마부장 역의 정인기 선배님은 1년에 두 편씩 독립영화를 찍으신대요. 독립영화와 거기서 주는 메시지에 엄청 애정을 많이 갖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정말 배우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용피디 역의 최성은 배우는 천재인 것 같아요. 대사 실수를 단 한 번도 안 했어요. 대사 버전도 되게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해온 거예요. 정말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표정이 망가지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요. 멋있어요, 진짜.



다음 작품은 이미 촬영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2~3주 전에 졸업영화 촬영이 끝났어요. 그런데 웃긴 작품은 아니고 멜로 찍었습니다.(웃음)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인데, 10년에 걸쳐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연인이 헤어져있던 시기에 우연히 만난 세 번의 날을 꼽아서 만든 영화입니다. 이제 편집을 해야죠.(웃음)



GV에서 못다 한 말이 있다면요.


실제 이야기가 연상될 수 있다 보니 걱정되는 것도 있어요. 특히나 이 영화는 부장님을 저격하려는 영화가 아니라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고 전하고 싶은데, 충분히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웃음) 피드백 중에 용피디가 짜증스럽게 느껴졌다는 말이 간혹 있었어요.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이러한 부당함에 대해 얘기했다면 되게 용기 있는 애라고 느껴졌을 것 같거든요. 물론 용피디가 약간 성격이 있는 친구지만 왜 그런 반응이 나올까 생각해봤어요. 아무래도 여자가 부당함에 대해 화를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속 용피디는 사실 논리적으로, 또 굉장히 나이스하게 얘기하는데. 그렇게 여성이 주장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구나 싶었어요.


2년 전쯤에 노브라 논란이 폭발하면서 속옷 문화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브라렛도 보편화됐고, 니플 패치도 흔해졌잖아요. 그게 몇 년 안됐죠. 저도 주변에 물어보면 ‘니플 패치 한다’, ‘브라렛 한다’, ‘집에선 노브라로 있는다’고 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공개적으로 하진 않으니까.(웃음) 노브라 이야기는 모두가 조금씩 느끼고 겪는 문제겠죠. 이 영화는 노브라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고, 책으로 따지면 노브라 이야기는 한 페이지 정도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여성 인권에 대한 얘기고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신체 검열에 대한 얘기 같아요. 큰 이야기이지만 작은 소재에서부터 시작해 나갔는데, 이걸 보시는 분들이 노브라 찬반에만 주제를 한정 짓지 말고 좀 더 넓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제 능력 밖의 일이지만.



〈젖꼭지 3차 대전〉을 통해 하고 싶었던 감독님의 이야기가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용피디처럼 용기 있게 하지 못한 적이 많아서 스스로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는 자기 주문 같은 게 담겨있어요. 사람들은 남들과 다 원만히 잘 지내고 싶잖아요,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고. 그런 마음과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건 아닌데?’하는 마음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면서 저도 용기를 낼 때는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또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왜 부당한지가 보이더라고요. 저도 젖꼭지에 모자이크를 치라는 말에 알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반박하려면 논리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젖꼭지라는 신체부위가 역사적으로 어떤 맥락 속에서 제약을 받았고 억압을 당했는지도 알아보고, 그렇게 역사를 찾아보면서 결국 이 억압이 만들어진 거구나, 당연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 정립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저에게는 해방감을, 속 시원한 쾌감을 준 작품이기도 해요. 관객 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인터뷰 사진과 함께 보시려면 클릭 (인디스페이스 인터뷰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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