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기획자가 되고싶어요 2편'
음악을 틀 수 있는 공간이라면 자주 보이는 영상들이 있다.
힙한 썸네일과 essential;이라는 간결한 단어, 그리고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오디오 스펙트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영상들. ‘상큼한 하이틴 바이브', ‘엄마가 이불 밖으로 나가지 말래', ‘아침 사과처럼 달짝지근 기분 좋아지는'과 같은 제목에 이끌려 재생하다 보면,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essential;은 'music to make your day.'라는 컨셉을 갖고 있는 뮤직 PD 앨범 소개 채널이다. 236개의 선곡된 음악 플레이리스트 영상들이 업로드되어있으며, 상황과 취향에 맞게 골라서 들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면 와인과 케익에 essential; 영상을 곁들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나도 이 채널의 플레이리스트를 많이 듣게 되었는데, 어떤 노래를 들을지 고민할 필요 없이 상황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편리함과 감동을 느끼며 사용하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플리를 골라서 자주 올리는 개인 채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플리를 혼자 선곡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essential;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다.
essential;은 개인이 운영하는 채널이 아닌, 벅스에서 운영하는 채널이었다. (음원 서비스 업체 벅스가 맞다.) 벅스는 NHN의 자회사인 NHN벅스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로, 대한민국 최초의 음원 서비스이다. 2018년 확보 곡이 4000만 곡을 넘어가는 등 음원 확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오랫동안 서비스 한 만큼 다른 서비스와는 특색 있는 모습이 보인다.
벅스에는 특색 있는 서비스가 있는데, 바로 ‘뮤직 PD 앨범' 기능이다. 검증된 DJ가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서비스이며 믿고 들을 수 있는 수많은 플리가 진열되어있다. 위에 보이는 것처럼 카테고리가 나뉘어있고, 화면을 아래로 내리면 앨범이 갤러리 형태로 배치되어있다.
essential;은 벅스 뮤직 PD 관리 부서에서 일하던 한 직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는 ‘우키팝'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우키팝 님이고 음악에 정말 많은 관심과 열정이 있는 분이다.
우키팝은 2019년 즈음 10대 ~ 20대가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채널의 플레이리스트로 노래를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템에 사람들이 얼마나 반응할지 단번에 알게 된 우키팝은 영상 학원을 끊어서 매주 다니면서 유튜브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했다. 벅스의 뮤직 PD 앨범이 있기에 선곡에는 우려가 없었고 essential;이라는 이름과 힙한 썸네일, 그리고 시선을 끄는 오디오 스펙트럼만을 추가해 하나둘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조회수가 100도 안 나와서 야근하고 숨어서 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느 날 벅스의 서비스 기획자분께서 ‘오늘의집’에 essential;이 보인다며 우키팝에게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들은 essential;을 단순히 음악을 듣는 플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 인테리어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실이나 방에 있는 큰 모니터가 essential;의 영상을 재생하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힙하고 감성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키팝은 영상의 방향을 그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대폭 수정했다. 썸네일을 친환경적이고 홈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게 조정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자주 방문하도록 했고, 그렇게 변경된 첫 영상부터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essential;이 존재하는 이유를 고민해보니, 결국 기업의 수익창출을 위한 일종의 수단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essential;은 어떻게 벅스에게 돈을 벌어다 줄까?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은 공통적으로 영상에 달리는 광고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 저작권을 이용하는 대가로서 광고 수익이 저작권자에게 넘어가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벅스는 essential;의 영상 조회수에 따른 광고 수익으로 돈을 벌 수 없다.
essential;의 영상을 많이 찾아 듣다 보면, 유료광고 포함이라는 글자를 보기 어렵다. 아니 없는 것 같다. 오롯이 힙한 썸네일과 오디오 스펙트럼, 그리고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 뿐이다. 따라서 벅스는 직접 의뢰받는 광고 또한 받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essential; 채널은 벅스로의 자연스러운 유입을 위해 존재한다. 각 영상의 정보에는 아래와 같은 정보들이 나와있다.
우선 영상의 대부분은 앞서 설명한 대로 벅스 뮤직 PD들이 선별한 플레이리스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자칫 PD들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기에, 벅스는 해당 플리를 제작한 PD의 닉네임과 해당 프로필로의 링크를 제공한다. 이는 PD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벅스로의 유입을 유도하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다음으로 영상 정보에 '*벅스에서 광고 없이 감상해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악 플레이리스트 영상에는 음원 저작권을 사용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광고가 붙는다. 소비자들은 대부분 이 점을 인지하고 있고, 벅스 또한 이를 구독자들에게 잘 설명하고 있다. 구독자들의 이러한 불편점을, 벅스는 오히려 역이용한다. 벅스에 똑같은 뮤직 플레이리스트가 있으니, 아예 벅스로 들어와서 광고 없이 음원을 들으라는 이야기다. (나도 이 글 쓰다가 설득당해서 결제할뻔했다.)
나도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essential;로 하면 벅스에서 운영하는 채널인지 알기도 어렵고, 그럼 유입을 많이 이끌어낼 수 있는 건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내 착각이었다.
새벽 두 시, 잠은 안 오고 지금 기분에 잘 어울리는 노래가 듣고 싶어... (라고 말하며 유튜브를 틀어 bugs_official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뭔가 감성 없지 않은가? 반대로 essential;이 채널 제목이면 굉장히 '힙'하다.
새벽 두 시, 잠은 안 오고 지금 기분에 잘 어울리는 노래가 듣고 싶어...(라고 말하며 유튜브를 틀어 essential;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아, 진짜 힙하다. 이게 벅스로 이름을 정하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벅스는 essential;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사용자 유입을 이끌어낸다.
유튜브는 업로드가 무료다. 콘텐츠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업로드는 무료인 반면에 사람들에 도달은 가장 많이 한다. 아마 벅스 MAU보다 essential;의 월 조회수가 더 높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벅스는 essential;을 놓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일종의 무료 마케팅 수단으로 엄청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ssential; 영상의 댓글을 보다 보면 '주접 댓글'이 많이 보인다. 당신 덕분에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었다느니 관리자 멜론으로 가라느니 돌고 돌아 벅스로 간다느니.. 이러한 반응들도 결국 벅스와 essential; 채널에 대한 애정이고, 그 말인 즉 뮤직 PD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벅스는 10년이 더 지난 뮤직 PD 앨범 서비스를, 새로운 방법으로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그것도 기존의 철칙 (수익 창출)을 벗어난, 정말 수익을 창출하지 않고 순수하게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essential;의 플리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한 사용자로서, 벅스의 이러한 소리 없는 움직임이 언젠가 음악을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어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