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Apr 02. 2024

아직도 가까이하기엔

얻었다고 마음을 놓는 순간 잃는다

이젠 엄마의 노욕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집 팔고 서울 가서 큰누이랑 잘 살아보겠다던 상경 때의 의기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눈치 보며 사는 것에 질려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봇찜 하나 달랑 메고 다시 내려왔을 때의 간절한 얼굴도 이젠 없다. 해진 얼굴에 살도 약간 올랐다.


내가 말려도 기어이 욕심을 내더니, 모든 걸 뺏기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내게 왔다. 나뿐 아니라 며느리에게도 받아줘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할 정도로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 좀처럼 할 사람이 아닌데 이럴 정도라니, 자존심이 무너지고 속았다는 분한 생각에 한동안 억울해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자숙하는 분위기로 그렇게 지내왔다. 늘그막에 뒤늦게 속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짠하게 안타깝기도 했다. 믿었던 자식에게 알몸만 남기고 홀라당 벗기듯 당했으니 괴심했으리라. 후회하며 돌아서서 부여잡듯 다시 내게  왔으니 엄마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겠지만, 거기 있으면 도저히 숨을 못 쉴 것 같아 살기 위해 왔다는 말에 나도 물러섰던 거다.


그런 엄마에게서 예전의 눈빛을 다시 봤다. 수더분하게 바뀌어 가던 모습이 일순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표정이 표독해지고 눈빛에 날이 선다. 다시 고개를 내미는 권위의식. 멀리서 온 둘째 과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마주 앉아 모인 카페에서 딸 옆에 앉은 엄마는 어깨에 힘이 잔뜩이다. 지금까지의 자제력이 무너진 건가? 우군을 얻어 든든해진 건가? 그럼 지금까지 억누고 감추고 있었던 건가? 잘 참고 있었네.


말과 행동 과잉이 보였다. 잠시 그러려니 했다. 그런 모습 오랜만이다. 서울로 이사 가기 전에 보란 듯이 잘 살 거라며 떠날 때의 힘이 느껴진다. 형의 초청이 있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도 갈 수 있을까 스스로 자신 없어하던 사람이 고집을 피우듯 캐나다로 여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반신반의했다. 형을 보러 캐나다로 여행 갈 정도의 체력이 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 코로나 백신의 후유증으로 1년 넘게 치료받고 운동해서 많이 좋아진 게 그나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정도다. 긴 비행시간과 여행지를 견딜 힘이 아직은 요원한데 굳이 가려한다. 의지처 없이는 10미터도 걸어가기 힘들어하면서 그런다.


그러나 잠시 떨어져 생각해 보면 그 여행이 꼭 체력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체력의 문제라면 내가 업고서라도 동행할 수 있음이라. 수술이 필요할 상황에서 이 정도 회복하여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에 자신감을 찾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여유를 조금씩 찾으면서 다시 예전의 그 모습이 나타나 보인다. 본인이 얼마나 고생했으며, 지금까지 어떻게 견뎌왔는지 등등의 신세한탄이 이어지면서, 그러니 너희들이 알아서 보필하라는 무언의 기대치를 은근히 내보이는 모습을 내가 본 것이다. 뭔가 위태롭고 걱정이 가시질 않는다.


사람은 헤어질 때의 마지막 모습이 다시 만날 내내 공백 각인된다.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 착각하면서 재회할 때까지 그때의 그로 기억한다.


잦은 만남이라면 오해를 풀 기회도 주어지고, 더 돈독해질 시간도 가질 수 있으나, 오랜 세월을 못 보다가 만나고, 다시 오랜 세월 동안 떨어져 있 경우는, 늘 그 마지막 모습만이 현재에 떠올릴 수 있게 지속되는 모습이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은 캐나다에서 엄마의 예전 말투가 재현되고 그 모습이 영원히 마지막이 된다면? 어쩌면 과거그나마 좋았던 상상을 남겨두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결과는 내가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는 없을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너무 의미부여를 하며 권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하고 이젠 괜찮아졌겠지라며 마음을 놓고 안도하는 순간 교만이 찾아든다. 욕심이 그렇고, 욕구가 그렇고, 인성이 그렇고, 의심이 그렇다. 중독처럼 참 쉽지 않다. 평생을 조심하고 참아 몸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워 지기란.




작가의 이전글 봄비는 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