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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19. 2024

예정된 길

누구나 알고 있어도

엄마는 이상한 말을 반복하며 다짐을 받는다.

"갈 길은 정해져 있으니, 내가 밥 해 먹을 힘조차 없어지거든 요양소로 보내라. 먼저 간 지아비가 있었어도 별 수 없을 테고, 자식들 많아도 요즘은 다 보내더라. 그 자식들 욕하기도 뭣하다. 감당하기 힘들어 그렇지 않겠나. 나도 갈 때까지 나를 돌봐달라고 하기 뭣하다. 서로가 힘들다. 주변 노인들을 보니 어쩔 수 없는 거고, 그 말 들으면서 남은 세상에 신세 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애쓰지 말고 보내라."

여기저기 아프다며 늘 치료를 받으러 오면서 어느 날부터 노인네가 이런 말을 자주 되뇐다.


" 부지런히 치료받으면서 그런 곳에 안 가려고 몸을 잘 간수해야지, 뭣하러 그런 말을 하나? 그런델 안 갈 생각을 해야지. 다 헛소리고, 내일 비 온다고 하니, 커피숍에서 커피가루 많이 얻어놨으니 비 오기 전에 얼른 뿌려놓고 빨리 옵시다. "


영정사진도 찍어놨고,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도 받아놨다. 직접 말은 안 하지만 한 번씩은 주변 정리를 하는가 보다. 사이가 안 좋아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이모들에게 연락을 넣고 주말에 만나기로 했단다. 미련도 섭섭함도 다 버리고 갈 낌새다.


" 큰애 한데 그리 당하고 나서, 네가 나를 안 받아줘도 별 수 없었지. 내가 한 짓이 있는데. 그래도 받아줘서 고맙다. 네가 나를 싫다고 하거나, 이젠 나도 모르겠말하며 나를 떠밀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 붙어있을 수 있겠나. 어쩔 수 없이 다시 큰애한테 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 네가 별 말없이 여기 터를 마련해 줘서 얼마나 눈물 나고 미안하고 다행이던지. 덕분에 얼굴 살도 오르고, 이젠 마음 놓고 잠도 잔다. 그래도 너를 보면 항시 미안하고 고맙다. 작은 딸내미가 그렇게 멀리서 와서 반기지만, 막상 보면 좋긴 좋지만, 잠시 있다 가만 그만인 거다. 뜬 구름처럼 왔다가 뜬구름처럼 간다. 항상 옆에 있는 네가 있어 든든하고 고맙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나이 들고 늙어감을 어쩔 수 없 받아들여함에도 쉽지 않다. 요즘 엄마를 보면서 지금의 모습이 살아서 마지막일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계실지 모르나 부재의 시간이 왔을 때 내가 엄마에게 못 다 한 미련을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엄마가 미련을 버리고 준비하듯, 나도 엄마에 대한 아쉬움을 없애려 노력한다. 헤어질 시점을 미리 염두에 둔 만남은 매번 만날 때마다 지금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 망막에 꾹꾹 밟아 채워도 다 차지 않는다. 떠나면 그리워지겠지. 살아있는 지금에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둬서 살아있지 않아 그리워 몫을 채워야 한다.


엄마를 안으면 굽은 등에 둘러진 딱딱한 허리보호대가 먼저 만져진다. 이 몸으로 참 먼 길을 왔구나. 내가 엄마 등을 쓰다듬으면 그렇게 좋은가 보다. 쭈글한 얼굴에 밝은 주름이 더 깊다. "아이고, 우리 아들. 그래, 참 좋다. 나도 이제 부자다." " 엄마, 그래, 가.  또 봐."


'엄마'라 불러봄에 깊이가 있을까?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는 뒷모습에 시원찮은 무릎은 오다리로 뒤뚱뒤뚱 끌린다.

저 모습도 그리울까?

가다 문득 멈춰 고개 돌려 뒤돌아보며 손짓한다.

" 어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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