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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ug 13. 2024

좋은 인연만 가득하길

무의미한 말과 행동은 없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외사촌 누나는 먼저 누구라고 말을 하기 전에 마주친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중노년 아줌마가 됐다. 여기에 와서 터를 잡을 때 한 번 와본 적이 있다고 했지만 내 기억엔 없다.  


나, 옥이누나야. 그러고 보니 눈매와 얼굴 윤곽에서  어렸을 때 봤던 태가 드러난다. 야, 누나 오랜만이네요.

여긴 그대로네, 너도 그렇고. 시간이 많이 지났죠. 하지만 대화가 이어지기엔 왕래가 너무 없었고, 서로에게 아는 것도 없었다.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별 일은 없었는지, 애들은 잘 컸는지 등을 묻기엔 누나의 등장이 급작스럽다. 무슨 용무가 있지 않고선 긴 세월을 건넌 어색한 발걸음이 그녀에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있구나.


고모 폰번호 알려주라. 앞뒤 사정이나 정황을 끊고 바로 직진이다. 무슨 일 있나? 조카가 고모 보고 싶은데 이유가 있나? 이유가 있냐는 답변이 바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번호를 일러주니 곧이어 주소를 묻는다. 이렇게 해서는 마음의 초조함만 비친다. 해결해야 할 뭔가를 하기도 전에 의도를 바로 드러내면 눈치 빠른 이 들은 숨을 텐데.


그 번호로 직접 전화 걸어 물어봐. 확인도 할 겸. 그게 더 쉽지 않아? 그렇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소 일러줘. 멀지 않으면 찾아가 보게. 그렇게 옥이누나는 떠났다. 올 때처럼 갈 때도 별 인사 없이. 세파에 시달린 얼굴이 탁하게 어둡고 눈초리가 가늘게 날카로운 느낌이다.  게서 원하는 정보를 찾 확인하고 일 다 봤으니 더 볼일 없다는 듯이.


낮에 있었던 일도 얘기할 겸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그래, 옥이가 왔데. 걔도 많이 늙었더라. 그동안 사는 게 빠듯했던가 보더라. 이혼하고 애들 키우느라 고생한 티가 나. 옥이 딸은 결혼해서 잘 사는가 본데 아들은 결혼 안 한다며 같이 산다더라. 젊었을 땐 예쁘고 똑똑했는데 세월이 참. 그래도 고모라고 찾아와 반갑기도 하고 날씨도 덥고 집에 찬꺼리가 없어 밖에서 한 끼 사 먹여 보냈다.


왜 왔데? 네 누이 전화 묻더라. 나도 모른다고 했더니 어찌 딸 번호를 모를 수 있냐고 하더라. 어느 날 번호 바뀌어 나도 알 방법이 없어 모른다고 했더니, 주소라도 알려달라더라. 가만 듣고 보니 예전 돈거래가 있었던가. 옥이는 사촌 동생이 어려워하니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네 누이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처음 이자라며 얼마를 몇 달 보내더니 그 후론 연락이 끊겼다며. 그게 언제 적 일인지. 이제 이자는 바라지도 않고 원금이라도 받고 싶다고 하더라.


오랜만에 조카라고 연락 와서는 엄마는 알지도 못한 딸과의 문제에 당사자도 아닌 죄인 되어 가슴에 덩어리가 쌓였으리라. 그런 딸을 엄마는 불쌍하다며 오래 감쌌으니, 낳고 키웠어도 내 딸이 그 정도일 줄 몰랐다는 말이 얼마나 궁색했을까.


누이의 금전문제는 그전에도 몇 건 있었지만 해결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종결이든 미완이든 최소한 정서적 이해를 구하는 정도의 사과나 염치를 보였어야 하는데 아니었던가 보다.


나와도 안 좋게 헤어진 누이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주변을 이용하다 그렇게 많은 적들을 두고 있음에도 본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지만 본인의 탓만도 아니라 강변할 것이다. 러다 폰 번호를 바꾸고 연락 두절. 옥이 누나는 헤어질 말미에 그럼 고모가 죽어가도 연락이 안 되겠네라며 묻고 떠났다.


그냥 의미 없이 툭 던진 말에도 듣는 누군가는 그 인연으로 깨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달려들어 멱살을 잡기도 한다. 무의미한  말에도 영향이 그러할진대, 그 말과 행동이 의도를 가진 경우라면 상대에겐 더 치명적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 앞으로 또 어떤 인연들이 얽히고설켜 삶이 엮이고 꼬이게 될지 걱정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문득 닥치는 데는 알 수 없는 과거의 무수한 인연들 작용이지 않을까. 그게 어쩜 다음 세대에도 닿아 있으니.

모쪼록  부디 좋은 인연들이 가득하길 깊이깊이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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