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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립 Feb 23. 2022

너와 함께 하는 삶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사실 나는 이 책을 신혼여행에서 읽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앞으로의 일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기념으로 간 여행에서 읽기에 적절한 책은 확실히 아니었다. 다만, 일종의 사회적인 의례로 여겨지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 사람과 매일 얼굴을 보고, 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동거’의 개념으로 시작한 조슈아와의 결혼인 만큼, 동거의 시작, 과정, 갈등, 행복 등을 다룬 이 책이 마음에 와닿은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는 동거의 주체가 동성이냐, 이성이냐의 문제보다, 동거하는 주체 간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냐의 문제가 더 중요했나 보다.


성격과 생활방식이 다른 두 사람이 모여 한 가구를 꾸린다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 나의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이랑 결혼할거야?’라는 물음을 당연시하며 만남의 종착지는 결국 결혼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언제나 밝고 열정적으로 보였던 사람이 배우자의 게임 문제로 울고불고 싸웠다는 이야기나, 단정하고 얌전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루에 몇 번 하냐의 문제로 집을 뛰쳐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조슈아랑 같이 살아도 저렇게 싸우게 되는 걸까?’라는 고민이 한참 들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보며 결혼이 종결되는 이유의 반은 ‘동거’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이라는 제도 혹은 문화 상 배우자의 가족이 그 이유가 되기도 하고, 배우자의 이성 관계가 그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 외에 생활방식이나 경제적인 상황 등 동거라는 생활의 한 형태에서 유발되는 갈등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주말에는 한가롭게 집에서 푹 쉬고 싶은 사람과 집은 답답해서 어디든 나가고 싶은 사람, 쓰레기를 여기저기 두었다가 청소할 때 한꺼번에 치우는 사람과 청소든 설거지든 눈에 보일 때 당장 해내야 하는 사람 간 갈등이 발생했을 때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법이다. 또한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서로의 수입이나 소비습관도 혼자 살 때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조슈아와 결혼하기 전, 그리고 결혼한 후에도 항상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는 최대한 서로 맞추고, 쉽게 맞춰지지 않는 것은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대화로 풀어보자.”이다. 어쩌면 나나 조슈아나 무던한 성격에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의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큰 문제 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혀 노력하지 않고도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닐 것이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법이 없는 내가 택배상자를 뜯은 칼을 신발장 위에 올려놓으면 조슈아는 말없이 그 칼을 문구정리함에 넣어두고, 산책을 좋아하는 조슈아가 낙엽을 보러 조금 떨어진 공원에 가자고 하면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은 나는 조용히 씻고 따라나선다.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해 존중하고, 또 서로의 일에 대한 열정과 꿈을 인정하며, 당장 눈앞에 다가온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응원한다.


이처럼 사소한 노력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황하나와 김선우가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과 그 해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작은 문제로 다투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렇게 지내면서 저런 걸로는 안 싸우는데.’ 라며 뿌듯해 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또 커다란 갈등을 풀어내고 나면 ‘우리가 싸우게 되면 나도 저렇게 현명하게 화해해야지.’ 라는 다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김선우, 황하나 작가가 이 책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은 단순히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사는 것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규정짓는 사회 속에서 그 압력을 밀어내고 당당히 살아가는 두 명의 ‘여성’의 생활상을 그리는 것이었을 테다. 그리고 나와 조슈아 역시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을 ‘연애는 해도 결혼은 안 할거야.’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들이 어떤 관점에서는 확정적인 방식으로 가구를 성립했다는 점에서 매우 응원하고 감동했다. 다만 조금 더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결국 두 명의 ‘사람’이 함께 하는 삶의 방식에 더 눈길이 갔던 것은 아마 내가 신혼인 탓일 것이다.




▷ 나는 혼자라서 못 하는 일이 있는 게 싫어서 뭐든 혼자서도 해왔고 또 꽤 잘 해왔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럿이 해야 더 재밌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 빚은, 지지 않는 게 아니라 잘 갚는 게 중요하다.

▷ 이 싸움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본다. 나의 가장 잘 드는 무기를 찾아 쥐고 한 번에 숨통이 끊어지게 적의 급소에 꽂는 것인가?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흠씬 두들겨 패서 밟아버리는 것인가? 함께 사는 사람,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잊어버리기 위한 싸움이다. 삽을 들고 감정의 물길을 판 다음 잘 흘려보내기 위한 싸움이다.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 ‘행복은 보장된 미래.’

미래에 맛있는 해장국이 보장된 오늘과 그렇지 않은 오늘은 분명 다를 것이다.

▷ 오늘도 내 동거인은 아주 우습고 또 존경스러운, 딱 그만큼의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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