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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중생활, 두 개의 이력서

by 하늘해


나에게는 두 가지 이력서가 있다.

하나는 직장, 하나는 음악.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쓸 수 있는 이력도 마땅치 않았기에 음악 경력들을 콘텐츠 제작 경험으로 풀어 넣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력서에서 음악 이야기는 빠지게 됐다. 학력란에도 음악 전공이 적혀있으니 면접 자리에서도 “음악을 좋아하셨나 봐요?” 같은 질문이 가끔 나오지만


내 이력서는 대부분 브랜드와 대행사에서의 실무 경험,

그리고 프로젝트 중심의 포트폴리오들로 채워져 있다.


입사할 때도,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도 굳이 내가 음악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편은 아니다. 누구나 알만한 히트곡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엔 그랬었는데’ 같은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고 그저 오늘도 작업을 이어가는 생활형 뮤지션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게 오히려 ‘일에 집중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조용히, 별말 없이 지내는 편이다.


음악 관련 이력서는 또 다르다. 공연이나 앨범 참여, 강의나 프로그램 참여 같은 문맥 속에서 내 직장 경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대부분 “평일에도 가능하세요?”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아, 평일엔 직장 다녀요. 광고회사에 있어요.”라고 말하면, 다들 영상 제작일을 하는 줄 아는데 요즘 나는 미디어 플래너로 일하고 있어서 사실 제일 많이 쓰는 건 엑셀이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각각의 평행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서의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이 너무 평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튀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젠 무던해도 문제인 것이다. 그럴 때 하나쯤은 ‘이건 제가 오래 해온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나만의 관심사나 맥락이 있다는 건 무던함 속의 가장 좋은 공감 포인트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직장 안에서 특정한 능력 하나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저 이것저것 두루 잘하고, 필요할 땐 직접 콘텐츠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기획부터 제작, 퍼포먼스까지 이어지는 그런 유연함이 필요해졌다.


음악 쪽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은 AI 작곡이 보편화되고, 홈레코딩이 쉬워지면서 음원을 발매하는 일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음원이 너무 많아서 어제 발매한 곡도 오늘이면 묻혀버리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음원을 발매한다’는 사실 자체가 끝이 아니라 기획부터 제작, 홍보 마케팅, 아티스트 브랜딩까지 전부 연결해서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가 직장에서 해오던 광고 마케팅 경험과 음악 작업이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두 가지 삶은 평행선처럼 달려왔다.

내 음악을 만들기 바쁘지 그걸 홍보할 여유가 없었고, 회사에서의 콘텐츠 제작은 다른 팀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노션으로 홈페이지를 만드는 계기로 두 가지 이력이 처음으로 한 곳에서 마주하게 됐다.


하늘해라는 이름 아래, 뮤지션으로서의 나와 마케터로서의 나를 함께 담아보았다. 이게 앞으로 어떤 시너지를 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기회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두 개의 나를 하나의 페이지 안에 담아보는 일은 온전히 나를 정돈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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