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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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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n 18. 2024

매운 맛은 슬프네요

아침편지

안녕요. 희미한 새벽을 지나 노트북을 열어요. 편지를 쓰는 이 시간을 사랑해요. 읽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어쩔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한 사람을 떠올리며 적을 때가 많아요. 친구 중 하나였다가 가족 중 한 사람이기도 해요.


글을 쓰는 건 애초에 답장 없는 편지를 쓰는 일이죠. 받음을 기대하지 않으니 행복한 겁니다. 뜻하지 않게 답장을 받을 때면 더 벅차고요. 댓글 남겨주시는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제가 가진 행운을 그분들에게 모두 보냅니다.


어제 카페를 가다 물밀듯 슬픔이 찾아와서요. 차에 가만있었어요. 마치 네 살배기 꼬마가 엄마를 찾듯 집으로 돌아갔어요. 아무렇지 않게 카페에 앉을 자신이 없더라고요.


신호에 걸려 대기했어요. 바깥이 뜨거워요. 차에 부딪히는 햇살이 그렇고 일그러져 지나는 얼굴들이 그래요. 한 분은 유독 화가 나 보입니다. 도장 찍듯 쿵쿵대는 걸음 소리가 차 안에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날이 뜨거우면 덩달아 감정의 온도를 올리기 쉬워요. 무성한 숲에 방방대는 생명들처럼, 사람 마음도 들썩거리는 거죠.


집에 와서는 먼저 부엌에 섰어요. 설거지를 하려고요. 수도꼭지를 틀었어요. 안 되는 그릇을 치우고 그제 지나다 사온 대파를 씻었어요. 20년 렌즈를 끼워와선지 각막이 얇아진 모양입니다. 흙을 씻을 뿐인데 눈알이 아려요.


도마 옆에 턱 쌓아두고 송송 썰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말했잖아요. 눈이 얇은지 눈물이 범벅입니다. 반 즘 다듬어가나요. 이젠 눈물 콧물 줄 줄이에요. 민소매를 입어 닦아낼 천도 없습니다. 대파를 비껴 손등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지게 뒀어요.


얼굴에도 홈이 있는가 계속해 왼 손등 위로만 똑똑 떨어집니다. 납덩이같은 마음에 오죽했을까요. 실컷 울고 싶으면 대파를 두 단 사서 다듬어야겠어요.


다듬은 파는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두었어요. 슬픔도 잠시 이렇게 얼어붙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녹아내릴 테지만요. 마음에 세세하고부턴 눈물이 잦아요. 화가 나다가도 슬프고, 모르아이가 혼나고 있을 뿐인데 울컥합니다. 아이들이 다툴 때면 성이 나다 슬프기도 해요.


그러고 마냥 엎어져 있었냐면 그럴 리가요. 읽고 씁니다. 잠시 외출도 했어요. 저녁은 정성껏 요리해 아이들과 밥을 먹었고요. 어제 하루는 장대비가 내렸던 겁니다. 우리는 날씨를 바꿀 수 없어요. 타인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예요.


나 하나는 세상 전부이지요.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으니까요. 내가 없으면 돈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내가 있어야 그대가 있는걸요. 


오늘은 어떤 날이려나요. 삶의 소용돌이 속이라도 서로에게 연민을 품는 하루면 좋겠어요. 제 마음이 그래요. 화요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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