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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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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l 01. 2024

살아온 날, 살아갈 날들

아침편지

좋은 아침입니다. 눅눅하고 어스름한 새벽을 가로질러 왔네요. 명상하고 요가했어요. 괜히 애틋하고 아련해요.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이 그래요.


구름이 비꼈어요. 햇볕이 새어들고 7월이 시작이에요. 칠 월, 입에 머금는 순간 뻘건 수박이 떠오릅니다. 임신했을 때부턴 달고 시원한 그 맛을 좋아하게 됐어요. 취향은 아닙니다. 사과를 제일 좋아해요. 어떤 과일 좋아하세요? 


어려서 부름을 참 많이 받았어요. 억울한 날도 있었을까 몰라요. 저는 어른들이 자꾸 나를 시키는 게 좋았어요. 쓰임이 있는 것이 마치, 사랑받는 것 같아서요. 쪼끄마한 때부터 요렇게 사랑에 목이 말랐나 싶지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일곱 가족이 함께였어요. 저녁을 먹고 나면 냉큼 부엌엘 가서 사과 한 알을 집어 왔어요. 과도를 쥐고 바닥에 앉아요. 손을 벤 일은 기억에 없어요. 누가 가르쳐 줬는지도 모르겠고요. 생각나는 건 일곱 살에도 과도를 쥐었던 것뿐입니다.


그 즘부턴 설거지도 잘했어요. 가족이 많았고 손님이 넉넉한 집이라서요. 먹고 치우고, 먹고 치웠던 것 같아요. 왁자지껄한 가운데 역할이 있는 것이 좋았어요. 틈나면 부엌에 불려 가고 동생부터 동네 아이들을 돌보았어요.


집에 가장 귀했던 건 남동생이에요. 할머니와 엄마가 합심해 동생을 부엌 귀퉁이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요. 어리둥절했지요. 가장 관심받고 사랑받는 동생인데, 아무도 일을 시키지 않으니까요. 


언제 즘부턴 몰래 동생에게 제 일을 시켰어요. "이거 몰래 부엌에 가져다 놔."


동생은 누나를 좋아해서요. 제가 시키는 건 무엇이든 했어요. 부엌에 몇 번 드나들게 하다 어른들에게 들통나서 혼쭐이 났지요. 그 뒤로도 굴하지 않았어요. 집에 어른이 없을 땐 공평하게 동생도 일하게 했어요. 분명 어리숙한데, 가끔 보면 치밀한 구석이 있어요.


세상이 적어도 절반은 우울하다고 해요. 그럼에도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면 역시 아름다워요. 우리 딸, 아들도 결국 삶에게 사랑을 고백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웃고, 울고 눈을 흘겼던 마음들이 하나같이 소중해요. 마냥 채워지길 바랐지만 등 따시고 배부르면 더 행복했을까요.


사랑하기 좋은 칠 월이예요. 덥다고 에어컨 바람 많이 쐬지 마시고요. 적당히 땀 흘리며 살기로요. 한 주 시작을 응원합니다. 아자 아자 파이팅이에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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