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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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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23. 2024

'왜' 그랬냐 물으신다면

모로 가나 결말은 같을 테니

좋은 아침입니다.^^ 금방 다른 피드에서 '도둑맞은 집중력' 서평을 읽었어요. 스크린 타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부러는 아니지만 근래 핸드폰을 잘 만지지 않아요. 편지 댓글에 답을 못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 기분 탓일까, 설정에 들어가 확인하니 맞아요. 인스타 접속 시간이 한 시간 내외입니다. 친구들 피드에도 놀러 가질 못해 미안한 마음이에요.


산란한 마음에 핸드폰을 멀리 두게 돼요. 다 두고 떠나고 싶은데요. 현실은 새벽을 만나고 요가원에 가고 출근을 하지요. 틈틈이 책을 읽고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을 이끌고 있어요.


그래, 만일 더는 편지를 쓰지 않으면 금세 잊힐 테지만 서운할 분이 있을 걸 알아요. 엊그제 오랜만에 뵙는 분이 제 인스타를 염탐한다고 고백하세요.


"몰랐지? 사실은 민혜 씨 피드 가서 가끔 글 읽는데 좋더라." 저는 편의점 문이 늘 열려 있어 좋아요. 고개 돌리면 언제나 하늘이 열려 있어 좋습니다. 10년이고 지나도 민혜는 거기 있더라,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대의 하늘일 순 없지만 편의점이라도 좋아요.


어제 요가원엘 가는데 평소와 다른 길을 택했어요. 두 갈래 길이 있는데요. 왼쪽은 4.9km, 차가 많고 신호도 많습니다. 오른쪽은 6km, 한산한 도로예요. 네비를 켜면 길도 짧은 왼 편은 11분 걸린다 나오고, 다른 길은 15분 걸린다고요. 저는 늘 오른쪽을 고릅니다. 


그 길은 대개 시간이 단축돼요. 널찍하니 밟기 좋은 도로라서요. 어젠 무슨 심보인지 왼 편으로 갔는데 네비에 나온 11분이 점점 늘어나서 15분이 걸렸어요. 출근하는 사람, 등교하는 사람으로 가득한 도로를 지나는데 자꾸 신호에 걸리더라고요. 알고 보니 과속 단속 카메라도 많네요.


어느 길로 가든 결승점은 같아요. 차이라면 브레이크를 몇 번 밟느냐, 오며 가며 무엇을 보았느냐 정도? 마치 인생길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제약이 많고 사람이 많은 길을 고를 수 있고, 좀 더 자유롭고 외로운 길을 고를 수도 있어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와 닮았지요. 직업이나 적성에도 빗대 생각할 수 있어요. 왜 레드 오션, 블루 오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중요한 건 빨라 보이는 길이나, 멀고 한산한 길이나 크게 보면 결말은 같다는 거예요. 자꾸 브레이크를 잡아야만 하는 왼쪽에 선 사람은, 자기 길이 짜증스러울 수 있어요. 어떤 날엔 실패라며 낙담하기도 하죠. 넓고 휑한 오른편 길을 가는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 하나 없는 그 길이 외롭고 멀게 느껴지기도 해요.


길을 택하는 순간은 몇 초면 결정됩니다. 매번 오른쪽 길을 다니던 제가 웬일, 차가 많은 왼쪽을 선택한 것처럼요. 그것은 나의 의지이면서, 또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내가 선택한 이 길에 사람이 드글대고 제약이 많더라도, 반대로 자유롭지만 외롭고 멀게 느껴지더라도 그저 과정의 차이임을 기억하려고 해요. 그렇담 우린, 내가 걷는 이 길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려야겠어요!


불평했습니다. '왜 왼쪽 길을 골랐지?' 하면서요. 세 번, 네 번, 신호에 걸리고 투덜대며 고개를 돌리니, 지하철과 정류장에 바글대는 사람이 보여요. 다른 길로 갔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입니다. 가만히 그들의 얼굴을 바라봤어요.


편지가 길었네요. 오늘도 우리, 내가 걷는 이 길에서나 맛볼 수 있는 풍경을 놓치지 말기로 해요. 문득 민혜 편의점도 기억해 주시고요. ^^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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