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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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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26. 2024

살기 싫다고 말할 때

아침편지

고요한 새벽입니다. 눈 뜨면서 일어나기 싫다고 머리에서 중얼거려요. 이 느낌 낯설지 않아요.


이 집엔 고양이가 다섯이에요. 제가 방에서 나오면 하나씩 자기 얼굴을 보여줍니다. 7년 즘 함께인 친구는 검은 고양인데요. 제 모습처럼 그림자놀이를 좋아하는 친구예요. 종일 새까맣게 어른대며 쓱, 지나는 게 전부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그렇고, 태어나 공장에 얹혀살던 버릇이 남아 그런가 싶어요.


스멀스멀 지나고 만지작대면 금세 자리를 뜹니다. 먼저 비비적대며 다가와도 마찬가지예요. 여태 사람이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가 봅니다. 새벽에 만난 느낌이 꼭 그랬어요. 일어나기 싫다는 데 이어진 마음은 살기 싫다는 마음이에요.


새벽을 특별히 여긴 지 4년이 넘어가요. 매번이고 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트 앉아 몸 마음을 살피는 제 자신이 기특하고 예뻐요. 우리 알듯 말 듯싶지만, 나와의 신뢰는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누가 나를 몰라줘도 나는 나를 알아줘야 해요.


몸이 깔아 눕는 것과는 달랐어요. 몸살이면 일어나기 싫을 수 있잖아요. 그간 예외 없이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해요. '일어나고 싶다(살고 싶다)'는 느낌 덕분이에요.


오래전 툭하면 살기 싫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어요. 정확히는, 살기 싫다는 느낌을 제가 싫어했다고 말할까요. 정말은 너무 힘든데, 살기 싫은데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달까요.


감이 주황색인 것은 자기 뜻은 아닐 겁니다. 제 모습이 그래요. 생겨먹은 게 생글 대는 것이 제 뜻은 아닙니다. 잘 울지 않고 쉽게 분통 터뜨리지 못하는 것은 자란 환경 덕이예요. 주변에서 자꾸 나에게 노랗다고 하니까, 붉은색일 때면 왠지 감춰야만 했어요. 그간 거짓말을 한 것만 같아서요.


민혜는 참 열심히 살아, 긍정적이야, 잘 웃어, 화내질 않아,


내가 나를 정의 내리지 않아도 세상은 나를 '감'이라고 말해요. 그래, 나는 감이구나, 그 모습과 다른 '나'는 감추거나 없애야 했어요. 아, 이런 강요라니 얼마나 살기 싫은가요.


매일 낯선 사람을 만나요. 피해를 입을까, 어떤 득을 얻을까, 컴컴한 눈빛이에요. 계산하는 마음은 두려움이라 그래요. 9월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아이 둘을 이고 가장 노릇하려니, 주부 노릇하려니 여간할까요. 그러든 말든 또 그놈의 '긍정'이 판을 칩니다.


반갑고 반갑지 않은 살기 싫다는 느낌이지만요. 우린 하기 싫은 게 뭔지 알아요. 그 덕에 하고 싶은 느낌, 살고 싶은 느낌도 아는 겁니다. '괜찮아. 이 정도 일은 괜찮은 거야. 긍정적이어야지!' 강요하지 말기로 해요. 살기 싫을 수 있는 거잖아요. 아무렴요.


흘러갑니다. 가만히 그 느낌, 그 곁에 있었더니 제 스스로 공들여 요가하고 명상하던데요. 밀어붙이지 않았어요. 드러누워도 좋았는데요. 도리어 움직이고 싶어 집니다.


긍정이 아니라 그대가 옳아요.^^ 편안한 토요일 보내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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