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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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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Nov 14. 2024

최면 속에서

아침편지

입에 우물우물 빵 껍질을 씹었어요. 역시 수능이라고 날이 차가운 기분이에요. 제가 있는 곳은 오후에 비소식이 있어요. 물기 머금은 하늘이라 차게 느끼는 걸까요.


잠은 잘 잤나요? 새벽 명상하는데 나도 모르게 머리 생각으로 편지를 줄줄 쓰고 있대요. 지금은 하나도 기억에 나질 않아요. 이래 놓으니, 글 쓰는 사람은 메모를 남기라고 하지요. 흘러갑니다. 생각이 그렇고 세월도 그래요. 흘러가기 때문에 움켜쥘 수 없어요. 화장실에 가거들랑 물을 틀고 보세요. 흐르는 물줄기에 손을 넣고 잡아보는 겁니다. 수도꼭지에선 쉴 새 없이 물이 쏟아질 테지만 잡을 수는 없을 거예요.


물기 묻은 손을 상상하니 꼭 어젯밤 꿈이 생각납니다. 피는 물과 다르게 질펀하고 끈적여요. 무릎이 까지는 정도가 아니라 찰랑대는 피를 만져본 사람은 압니다. 흘러야 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혈액은 응고됩니다. 정말이지 떡이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언젠가 최면사를 마주한 적이 있어요. 일전에 말했다시피 제 귀가 두꺼워 뭐라도 잘 믿지 못해요.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인데요. 썩 신뢰가 가지 않는 상태지만 최면을 당하고 말았어요. 후에 뇌과학 책을 읽어 보니 최면이 가능한 게 맞아요. 우린 사실 매일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살아갑니다.


여하간 최면에 빠진 느낌은 잠에 들어 꿈꾼 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생생한 꿈에 깨고 보니 현실이라네요. 줄줄이 햄처럼 질문에 대답했다는 소식도 들려요. 잠든 사람에게 말 걸었다가 대답하는 걸 저도 본 일이 있어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전생을 본다는 최면이에요. 믿거나 말거나, 꿈에 저는 참호 속을 굴러다니는 간호사였어요. 어쩐지 다음 생엔 남자로 살고 싶더라니, 몇 번이고 여성이었다면 그럴 법하지요. 농담입니다.ㅎㅎ



그곳에서 저는 침착하고 냉정해야 했어요. 최면사는 내 전생이라는데 꿈과 다를 게 뭔가요. 지금 이 현실이나, 평소 꾸는 꿈이나 최면을 구별하기 어렵네요. 내 뜻대로 넘나들 수 없지만요.



총칼로 찢기거나 뜯긴 사람은 형제나 다름없었어요. 아픈 것은 그를 찌르고 죽게 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는 겁니다. 가해자를 주목한들 의미가 없어요. 할 수 있는 건 지금 눈앞에 아파하는 사람을 하나씩 치료하는 일뿐이에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요. 피도 마찬가지라니 삶이라고 다를까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지요. 붙들려니 괴롭고 잡고 있다면 썩어 고약합니다.



신선하고 새로운 오늘을 만나면 좋겠어요. 수험생도, 수험생이 아닌 우리도 충실한 목요일 보내기로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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