엷은 하늘빛 아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해요. 새벽은 독서모임이 있었어요. 5시 반에 시작해 두 시간을 함께였어요. 나누었던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잘 알려진 명문장이지요. 솟아 나오려는 '나'라니, 그런 나를 관찰하고 인정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길 나눴어요. 현정님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말해요. 옆에 미연님은 자기가 선택한 게 옳은 것 아니냐고 말했어요.
헤세는 모든 게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라고 표현합니다. 모두가 같이 한 곳에서 한 곳으로 흘러가기를, 사는 내내 이토록 헤매는 거예요.
저라면 종종, '나'라고 말할 게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느낌이 들어요. 나에게, 나라고 믿는 것에 치렁치렁 장식을 걸고 메는 일에 공을 들입니다. 실상 낡고 버려질 것들이죠. 삶의 본질과 멀게 열중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러워요.
답이 정해진다면 이미 틀린 거라는 말이 있어요. 모르겠다면, 정답이 없다면 그게 바로 진리라고요. 그러니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여야 합니다. 확정 짓고 답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해섭니다.
20대에 <데미안>을 읽었을 때, 수년 전 재독할 때 그리고 이번 읽을 때 일렁이는 질문이 달라요. 답을 찾아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게 아니지요. 도리어 모르겠다는 것을, 답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가볍고 편안합니다.
오랜만에 '꼰대'친구를 데리고 옵니다. 주변에 누구라도 떠올리셔도 좋아요.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분의 표정을 보세요. 행동을 관찰합니다.
힘이 들어간 그 모습에 편안함과 자유가 느껴지시나요?
막상 무언갈 '안다'라고 말할 때면 나의 삶이 괴로워집니다. 내 뜻과 다른 상황을 자꾸 마주하게 돼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느낍니다. 견고한 성이 무너지는 기분이에요. 이기지 못할 적에게 침범당할 것만 같아요. 그런 때면 죽음의 공포와 맞먹는 두려움으로 삶을, 사람을 대할지 모르겠어요.
질문은 관심이고, 관심은 사랑이지요. 오늘 '나'에게 어떤 질문을 하실 건가요? 순수한 호기심이면 어떨까, 생각하며 먼저 묻고 싶어요. 지금 그대 마음은 어떤가요?
마지막 가을을 누리자고 모임 말미에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소식이 들려요. 낙엽이 떨어지면서 기온이 내릴 거라고요. 섭섭한 마음으로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봅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것은 가을 낙엽만이 아니지요. 흔들리고 흩어지는 오늘이, 그대가 애틋해요. 따듯하고 포근한 토요일이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