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내가 아닌 그 이유

외모는 변하지만 사람은 변치 않는다

by 이림

오랜만에 산책 길,

더위를 식힐 겸해서 붐비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지나쳐 가는 풍광을 휘둘러 본다.

그 군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손잡고 나온 노 부부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연배가 느껴지는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 세련된 하얀 바지와 검은 폴로셔츠,

그리고 모자는 물론 등에 맨 가벼운 가방까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뿐인가, 가까이 다가와 건너편 벤치 앉아 나누는 교양 가득한 어투까지 대화내용까지도 귀에

쏙 들어와 선명하게 들려온다.


“오늘 산책 길에 본 꽃 이름이 무엇인가요?

그 대답이 “잘 모르겠는데, 집에 가서 같이 찾아볼까요!”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까?

“오랜만에 콩국수가 어떠냐? 등…

서로 쳐다보고 호응하며 나누는 대화는 그 정석을 보는 듯하였다.

상호 간의 존칭은 기본이고, 무시나 질타가 없는 일상의 가벼운 그들의 대화 속으로 나도 모르게

자리에 앉아 넋 놓고 한참이나 듣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 사람 속내,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외모는 변하지만 사람은 변치 않는다.

삶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 가치관도 세월과 함께 변한다.

옷차림, 스타일은 물론 대화의 질, 그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이십 대나 삼십 대에는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같은 디자인, 같은 스타일의 옷을 두 벌은 사지는 않았다.

아무리 색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랬었다.

그때는 꾸미고 치장하는 걸 좋아해서 미용, 화장품, 옷 등에 투자를 많이 했다.

물론 직업과 전공이 그 분야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투자가 아닌 소비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돈은 모이지 않았고 인간관계는 가벼웠으며, 미래 역시도 젊은 만큼 불투명했었다.

겉으로는 밝고 활기차 보였지만 속은 허전하고 불안했다.

여전히 불완전했던 사십 대를 보내고 이제 그 나이도 잊고 싶은 황혼을 바라보고 걷는

지금은 겉모습에는 흰머리가 늘었고, 손톱은 뭉툭해졌으며 잔주름은 늘었지만,

이런 변화를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듯하다.

물론 돈을 들이면 지금보다 더 멋질 수는 있겠지만 외모는 이젠 절대적 관심사가 아니다.

신경 쓰고 치장한다고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서 이다.


사실 옷차림은 신경 써서 입는 것이 좋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옷차림, 그 외양으로 판단하고 재단하여 대접이 달라진다는 건 온몸으로 느끼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젠 옷차림도 신경 쓰고, 마음에 들면 무리해서라도 두, 서너 벌을 산다.


하지만 옷을 갖추어 입기 전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건 삶에 대한 태도’인 듯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가까이서 보면 외롭고 우울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허름하게 입었지만 내면이 단단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싼 명품으로 휘감고 있어도 허술하고 왠지 짠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청바지에 흰 셔츠만 입어도 빛이 나는 사람도 있다.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빛, 그 아우라(aura)는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표정이나 말투, 가치관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내면의 모습은 그 사람이 지금 입고, 들고, 걸치고 있는 것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겉모습은 상대에게 잠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결국 속내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래도 외면 역시도 내면의 아름다움에서 빛이 난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나이에는 장사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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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멋짐은 내가 갖춘 스타일도, 체형의 아름다움도 머리 색깔도 내가 아니다

나는 내 웃음 속에 감추고 흘렸던 눈물이다.
나는 읽은 글과 책이고,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다
“내 나이는 내가 아닌 그 이유”이다.


그래서 많이 읽고 느끼고 쓴 글에는 사유의 결을 담고 싶을 뿐이다.